딸아이는 높은 곳에 위치한 하늘다리 위를 성큼성큼 올라갔다. 자기가 좋아하는 미끄럼틀을 타보겠다는 일념으로 저 높은 초고층 미끄럼틀을 말이다. 그간 높은 곳이라면 몸까지 부들부들 떨며 손서래를 치던 딸아이가걱정스러웠다. 나는 지금껏 딸아이가 내어본 용기중 가장 큰 용기에 순간을목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휴가 어느 날, 코로나로 인해 그간 끊어왔던 키즈카페를 다시 붙여보며 생긴 일이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 바닥이 훤히 보이는 밧줄로 된 하늘 다리에 도달 한 순간 모든 시간은 정지된 듯 보였다. 겁먹은 딸아이와, 그런 딸을 보는 겁먹은 어른이 대치중이었다. 딸아이에 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고, 높은 곳이 주는 공포감에 덜컥하는 울먹임이 내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듯했다.
처음에는 담담하게 잘 올라갔다.올라가서는 미끄럼틀을 향해 몇 걸음 옮기긴 했지만, 아득하게 내려앉은 아래를 보자 몸에 힘이 빠지며 늘어진 듯했다. 왔던 길 한번, 가야 할 길 한 번씩 번갈아 본다. 개구리처럼 축 늘어진 체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보였다.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지만, 분명 이도 저도 선택할 수 없음에 모든 생각이 멈춰버린 듯했다.
얼어버린 딸을 바라보며 할 수 있다고 외쳐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원망 섞인 외침뿐이었다.
"할 수 있어~ 일어서서 걸어봐~"
"못해, 못하겠다니깐, 얼른 아빠가 와줘~ 으어어어엉~~"
순간 딸아이에 울먹임을 보며, 그간 박제된 첫 기억들이 머릿속을 휘감았다.공포감에 짓눌려 숨도 잘 쉬지 못했던 감정이 고스란히 딸아이에게도전달되었음이 분명했다.
과거 어렸을 적 친구들에 등살에 밀려 롤러코스터를 처음 탔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안전벨트를 채우고는 의젓하게 앉아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 내뱉고 있었다. 겁에 질려 정신은 이미 혼미했음에도,그런 감정을 잊기 위해 그렇게 떠들어 댔나 싶다.이윽고 끝없이 올라가던 열차가 꼭짓점에 다다랐을 때에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무더운 공기 속에 열차와 함께 얼어버린 나, 되돌리고 싶지만 이미 늦었음에 질근 감았던 눈, 그리고 떨어지는 낙하 속에순수함이 타락하며 내뱉는욕지거리들까지. 뭣하나 버릴 게 없는 소중한 첫 경험이며, 머릿속에 박제된 기억들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과거 그 상황에서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무심코 내뱉었다.
"떨어지면 아빠가 잡을 거니깐 걱정 말고 건너가도 돼~~~"
"그럼 아빠가 잡아 주는 거예요?"
"응~ 당연하지, 바로 밑에서 손으로 받치고 있을게"
이 말을 듣자 딸아이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용기란 것을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앙다문 입에서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간 짓눌렸던 마음에 공포가 사라지고, 숨이 쉬어지나 보다. 얼마나 대견하고 고맙던지, 한걸음 한걸음에 울림이 내 마음속에까지 메아리치는 듯했다.
살다 보니 감정이라는 것이 우려나 걱정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더라. 다시 툭툭 털고 일어 나, 다시 가던 길 갈 수도 있지만. 골이 너무 깊어,공포감에 사로잡히게 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이럴 때 용기란 것이 필요하다. 용기를 낸다는 것은 스스로를 견인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혼자만에 힘으로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용기를 내는 방법과 주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앞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너무 어둡다 못해, 눈을 감는 것이 더 밝아지는 기분마저 든다. 뒤돌아 서서 왔던 길로 하염없이 뛰고 싶었지만, 눈이 따갑도록 어두운 곳에서의 방향 감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디선가 할 수 있다고 앞만 보고 뛰라 한다. 할 수 없는데, 앞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미칠 노릇이다. 이럴 때는 그냥 조용히라도 해줬으면 싶다.
용기란 어쩌면 할 수 있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실패도 하고 그런 것인데, 그게 뭐 어쩌라고. 실패 다음 성공이 오는 것이지, 실패 뒤에 마침표가 찍히지 않는다. 뛰어가다 넘어지면 또 일어나면 되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좀 쉬었다가 일어나면 된다. 걸음마를 하는 아이에게는 할 수 있다는 백번에 말보다, 잘 넘어지는 방법을 가르치고 안 다치게 넘어지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수순이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