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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Aug 24. 2022

하루에 시작과 끝은

소중한 당신

 커튼 사이 벌어진 틈으로 눈부심이 새어 나온다. 그렇게 눈을 뜨는 것으로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머릿속은 밤새도록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인지, 오만가지 단어들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있다. 그중에는 삶에 대한 태도를 언급하는 단어도 있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 같은 단어도 있다. 나는 이런 직설적인  단어들에 대해서 짧게나마 답글을 달아주며, 몸과 마음을 이어 붙여본다.



'네가 거기서 왜 나와'

'넌 저번 주에 나왔었어'

'오늘 오전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회사 가야 해'

'좋은 생각이네, 하지만 다음에 해볼게'



불혹을 바라보는 어른의 생각에서 나온 단어 치고 유치하기 그지없다. 그 조직에 실력은 막내에 실력을 보라 했다는데, 이런 단어들은 어쩌면 본연에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루에 시작을 알리는 출근길, 눈을 뜰 때부터 나를 따라다니는 감정에 파편들은 아직까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다. 그래서 그런지 발걸음이 너무 무겁다. 그 어떤 감정 하나도 허투루 넘겨짚는 일이 없도록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 본다. 출근길은 분명 끌려가는 기분과 끌고 가는 기분 모두를 체감한다. 사무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기까지, 나를 따라온 소중한 생각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곧 시작될 쳇바퀴질에 행여다 떨어질까 싶어, 기억 속에 고이 접어, 다시금 펼쳐 볼 퇴근길을 기약해 본다.



그러다 하루를 되짚어보며 시계를 보다 보면 어김없는 퇴근길이 온다. 그 사이 고단했던 기억과 감정은 수도 없이 떠오르지만 집으로 가지고 가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발에 밟히는 잡초들을 보고도 떠오르는 그 흔한 감정마저도 회사 것은 가져오고 싶지 않았다. '먼저 퇴근해보겠습니다.' 이 한마디에 모든 의식과 몸에 흐름은 집을 향할 뿐, 발걸음은 그저 해맑다.



퇴근길 차 안, 그간 접어두었던 감정들을 조심스레 펼쳐본다. 이상하게도 분명 수십 개를 접어 넣어놨는데, 꺼내보면 몇 개 남아있지 않다. 일에 옭매여 하루 종일 전화기나 붙들고 언쟁이나 벌이고, 오탈자에 목숨 걸고 살다 보니 괜스레 숙연해졌나 보다. 머릿속에서 지켜보는 바깥세상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을 것이다. 한없이 꺼지는 한숨과, 한없이 떨구는 고개에 그저 내가 불쌍해 보였을 테지. 감정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내 삶을 뒤로하고 떠나갔다.



이렇게 잊히는 생각에 조각들이 너무나도 아깝게 느껴진다. 사실 일이 고달프고 힘든 것은 이해한다. 생계를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니깐. 일이 재미있다면 돈을 내고 다니는 거겠지.



나는 잠이라는 것에 매일 들지만, 꿈이라는 것은 꾸지 않는다. 언제부터 인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머리도, 마음도, 몸도 온몸에 돋아난 상처를 치유하느라, 꿈을 꾸는 것조차 잊어먹은 듯했다. 요즘은 그래서 꿈을 꾸는 꿈을 꾸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꿈은 꾸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머리 혼자 꾸고 있었나 보다. 행여나 꿀잠을 방해할까 싶어. 밤새도록 혼자 꾸고는, 기억에 조각들을 만들어 내어 놓나 보다. 내가 힘들어 보인다고, 츤데레처럼  던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금이라도 움이 되고자 했겠지.



그래, 그래도 이렇게 사는 것이 사는 맛이지. 일하면서 10개를 잃어버려도, 11개를 밤사이에 만든다면 꿈은 점점 찌고 있다고 본다. 언젠가는 꿈이 뒤룩뒤룩 찌면, 그날이 오면 삶에 무게가 더 무거워졌으면 싶다. 어떤 풍파에도 끄덕 없도록 말이다.


오늘도 초고도 꿈돼지를 향해 꿈을 찌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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