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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Sep 18. 2022

착한 사람이 회사를 다니는 법

프롤로그

 내가 회사를 다닌 지도 어느덧 15년이 넘어간다. 처음에는 작은 중소기업 신입사원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때는 심부름만 잘해도 대리를 달아 줬다. 대리를 달고 이제는 일 같은 일을 해봐야지 다짐하던 찰나, 회사 사정이 별로 좋지 못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난 이제 겨우 대리인데 설마 별일 있겠냐며, 최선을 다하며 다니던 그때 황당한 통보를 받게 된다. 팀 전체를 정리한다는 소식, 그리고 3개월 이내로 퇴사를 하라고 했다.


 암담했다. 나는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집을 산 것도 아니었지만, 지금껏 충성하고 몸담았던 회사에서 받은 처우가 믿기지 않았다. 여러 번 확인하고, 정확한 속사정을 듣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사업 철수에 따른 점진적 해고로 돌입한다고, 그중 연구소가 가장 먼저 시행될 뿐이라고.


어차피 남아 있어도 언젠가는 정리될 것이었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은 편했다. 아등바등 살아봤자, 무슨 소용 있을까 싶었다. 그냥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며 한참을 다독이고 다독였다. 하지만 숨 쉴 새도 없이 치열하게 살아오던 내가, 당장 대낮에 숨 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끼자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자존감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었는지, 비워져 내린 가슴을 보며 과거에 넘쳐흘렀을 그 흔적만 짐작할 뿐이다.


그때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복수라는 것을 다짐했다. 누가 열심히만 살면 된다고 했나. 누가 앞만 보고 살면 된다고 했나. 끝없이 차오르는 감정은 죄다 사회를 향한 빗나감으로 흘러갔다. 아무리 나를 다잡으려 해도, 틀어진 마음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착하게만 산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회사가 나를 씹어먹던, 내가 회사를 씹어먹던, 잘 될 회사는 무슨 짓을 해도 돌아가고, 망할 회사는 뭘 해도 망한다는 사실을 내 가슴속에 아로새겼다. 그렇게 나는 사회가 준 첫 번째 관문을 독기로 통과했다.



이후 새로운 직장에 정착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끓어오르던 분노도, 그간 착실히 키워온 부지런함과, 착함을 한순간에 집어삼킬 수 없었나 보다. 그때부터 나를 좋게 봐주신 분들에 은혜로움은 지금껏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 관심과 온정이 지금에 나와, 우리 가족을 있게 해 주었다. 그 어떤 행동과 말로도 갚을 수 없음에 안타까울 뿐이다.


삶에 첫 번째 관문은 독기로 끝났지만, 두 번째 관문은 이렇듯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음이 신기했다. 나의 삶을 관전하는 분이 있기라도 한 것인지, 삶이 가진 이중적인 모습과 막판 뒤집기가 있음을 알려주려는 듯했다. 인생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뒤집기 한방에 끝이 나기도 하지만, 끝없이 몰아치는 고통과 암울함 속에서도 희망에 싹을 틔울 수 있음을 다그치는 듯했다.


그간 많은 시간이 흘렀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감사한 마음이란 것이 기대에 부흥하기 위해 희생을 강요하기도 하고, 그런 희생은 또 다른 기대를 불러오기도 했다.


이제는 세 번째 관문으로 진입하는 듯했다. 감정에 격동이 1막, 2막 못지않게 휘몰아치고 있음에 모른 척할 수만은 없다. 그간 내가 겪었던 감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희망, 기대, 희생, 당연함, 실망감,,, 이 모든 것들이 한 곳에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목도했다. 회사를 위해서 자행했던 일이 결국에 나를 위한 일이 아니었음을 다시 한번 겪으며, 지금 나처럼 아파하고 있을 사람과, 아파할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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