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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비 그리고 바람
Oct 02. 2022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는 좋지만, 누구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사회생활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사람 대부분은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은 경우가 많다. 자신의 지위와 체면치레를 위한 도구로 사회생활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해당 집단에서만 유효한 승차권이지만, 직급이 인격인 양 거드름을 피우는 행동은 당사자에 모자람을 언급할 뿐이다.
반면에 나를 포함한 대부분에 직장인들은 사회생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불법인데 합법, 선택인데 의무와 같은 느낌을 먼저 떠올릴 것 같다. 있는데 없고, 없는데 있어야 하는 모순이 사회생활이라는 무대 위에서는 논리적인 대본으로 변모한다. 사회생활을 통해 삶과 생계유지를 위해 돈이라는 것을 벌면서도 돈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을 얻기도 한다. 세상을 조금 살아보니 모순이 아닌 것이 없다. 모든 것은 모순 투성이고, 그런 모순을 얼마나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삶에 질을 좌우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돈도 싫고, 아프고 싶지도 않다면 산과 들에서 자연과 함께 하면 된다. 사람과 일이 주는 고단함보다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이 좋다면 그렇게 살면 된다. 그 정도 용기가 없다면, 현실과 마주할 용기라도 있어야 한다. 자신이 세상을 관전하고 평가하며 고칠 수 있을 정도에 전능한 그 무엇에 존재가 아니라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나 사람을 고쳐서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변할 수 없는 것을 욕하며 수저의 재료를 탓하는 것은 자신의 무능함을 자랑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사회든 직장이든 사람이 사는 곳이고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는 곳이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기도 하며, 사람이 사람을 인정하기도 한다. 우리가 이토록 힘들어하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잣대와 다른 누군가의 잣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거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다 생각하면 세상이 평등치 못해서 그런 것이라 하고, 자신이 잘해서 받는 인정에 대해서는 세상이 평등하다 한다. 드넓은 하늘의 특별한 별이 되고 싶어 하는 욕구는 선사시대 이전부터 하늘을 보고 자라온 인간의 꿈이자, 존재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잘되면 자기 탓이고, 안되면 남 탓으로 돌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나 보다. 자신에게 원인이 없으니, 개선점도 없다. 로또 말고는 삶을 보다 좋은 방향으로 끌어갈 기회조차 보이지 않는다. 예기치 못한 사소한 결과 하나로 사회를 탓하고 환경을 탓하고 누군가를 탓하기 바쁘다. 아무리 탓해도 개운치 않음은 우리를 절망으로 이끌 뿐이다.
이제는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 쓸데없이 탓만 하는데 에너지를 쏟지 말자. 누군가를 만나 탓을 하며 공감을 구걸하며 살지 말자. 구질구질하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박애주의만을 외치며 자신만 갈아 넣는 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위해 용기 충만한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 살아도 되는 그런 단순한 무대가 아니다.
사회생활이 가진 양면성을 이해하고, 두 가지 성질이 가진 모순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모순이 이해되는 어딘가의 합치점을 찾는 과정이야 말로 비로소 사회생활의 목적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