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병원을 싫어하는 이유

어렸을 적 트라우마 병원

by 눈 비 그리고 바람

나는 병원이 싫다.

병원만 갔다 오면 몸과 마음은 분리가 된다. 옳은 말만 해서 그런지 반박할 수도 없다. 운동장에 오와 열을 맞춰 차렷 자세로 들어야 했던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처럼 병원만 오면 지치게 되더라.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 진료 시작 시간 7시에 맞춰 갔음에도 대기 순번은 137번이었다.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다. 10분이라도 더 일찍 오지 못한 나의 게으름을 탓했다. 대기실 구석자리에 등받이가 없는 자리에 사람들을 피해 앉았다. 대기 번호가 호출될 때마다 어색한 억양의 여자 기계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따금씩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병원이 주는 차가운 느낌은 십수 년이 흘러도 여전히 어색하기만 하다. 항상 옳은 곳이고, 없어서는 안 될 곳이지만 어렸을 적 나는 병원만 가면 그렇게 울었다.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공포보다 다른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내가 어렸을 적 일이다.

독감 때문에 엄마와 함께 병원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도 엄마의 뒤통수만 보고 걸어갔다. 연행되어 갔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병원에 도착하자 숨이 넘어갈 듯 울며 병원을 나서는 남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짧은 시간 동안 의미심장한 느낌이 서로 오갔다.


'너 큰일 났다. 주사 맞으면 정말 아파'

'진짜? 나 어쩌지,,, 정말 아파? 허엉~'


주사를 맞는 것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주사 바늘이 몸을 뚫고 들어가 잠시간 머뭇거림은 참을만한 자극이다. 하지만 충분히 굵고, 긴 바늘이 내 몸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납득할 수 없었다. 바늘이 몸에 파묻힌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사지 끝에서부터 어떤 시림이 몰려왔다. 손등부터 팔꿈치까지 닭살이 돋는다. 칠판에 분필을 옆으로 눕혀서 긁는듯한 느낌이 온몸을 휘어 감는다. 난 단지 이런 느낌이 싫었다.


주사를 맞지 않는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 나선적도 있다. 진찰을 받고 나서야 함정이란 것을 알았다. 주사를 맞으면서 엄마를 올려다봤다. 엄마는 나의 원망 섞인 시선을 외면했다. 시림, 아픔, 아련함, 애틋함, 불쌍함, 배신,,, 여러 감정들이 한데 섞여서는 병원이란 곳에 묻어났다. 작은 체구의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웠음이 분명했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딜 봐도 잘 정리된 투성이었다. 밝은 톤의 벽과 거울처럼 반사되는 바닥은 내가 숨을 곳이 없음을 말해줬다. 울 채비를 마치고 정신을 가다듬자 어디선가 소독약과 락스 냄새가 났다. 어렸을 적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때도 이런 냄새가 났었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진찰을 하기 위해 의사 선생님을 만나러 갈 시간이 다가왔다. 간호사는 내 이름에 어린이란 호칭을 붙여 불러줬다. 어른에게 존대어로 대우받는 느낌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름만 닿아도 울 수 있게끔 연습이 끝난 상태였다. 그냥 냅다 울었다. 엄마 다리든 치마든 당길 수 있는 건 다 당겨 봤지만 끌려가는 것에는 답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이 청진기를 배에 대자 차갑다 못해 따가운 느낌이 들었다. 숨이 턱 막히며 배가 움츠려 들었다. 반사적으로 움츠려 든다는 느낌이 이상했다. 무슨 감정인지 몰라 아픔으로 치환시켰다. 아프지도 않은데 펑펑 울었다. 엄마가 아무 곳이나 닥치는 대로 꼬집으셨다. 의사 선생님 보는 앞이라 그런지 복화술을 하시면서 경고를 주셨다. 대부분 못 알아 들었지만 '집'이란 단어와 '맞는다'라는 단어가 또렷이 들렸다.


한참을 울다 실눈을 떠봤다. 간호사가 자그마한 약병에서 주사기를 대고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나는 그 뒤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어딘가에서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가 어두워 보이시는 어르신에게 거기로 가시면 안 된다고 안내하다 언성이 조금 커졌던 것 같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렸을 적 감정을 내 몸에 주사기로 주입한 듯 너무 생생한 기억이었다. 도리어 현실이 흐려지고 과거가 선명해졌으니 말이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투명한 듯 보이는 바닥과 소독약 냄새가 진동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유리로 된 문이 열리고 어린아이가 울며 들어올 것만 같았다.


코 끝이 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