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은 창작의 지름길이다.
나는 글을 훔친다.
책이나 글을 읽다 보면 좋은 글이라 생각되는 문장이 있다. 뜻은 간결하나 품고 있는 의미는 예사롭지 않은 그런 글. 이런 글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이라는 생각에 멱살 잡히는 느낌이 든다. 나는 왜 이런 문장을 내어 놓을 수 없는지 따져 묻곤 했다.
원문을 다시 읽었다. 밀려오는 느낌의 다채로움은 변함없다. 한껏 고조된 감정을 만지작거리며 부러워했다. 나도 이런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한참 동안 끄적여 봤다. 역부족이다. 결과를 알고 보는 영화처럼 단어와 순서가 차례로 떠올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원문 안 보고 썼겠지. 그랬다면 내 것이 되었을 텐데. 혼자 투덜댄다. 단어를 가지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배치를 다시 놓는다.
‘내 갈길이 그곳인데 어쩌랴’ 하며 비슷한 말투로 막혀버린 창작의 고통을 돌파하고 만다. 처음부터 그렇게 쓰려 했다는 생각은 글을 훔치는데 죄책감을 덜어줬지만 도둑고양이가 된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양심이 가려워 온몸이 뒤틀렸다. 그때부터 나는 메모장에다 발견한 글을 옮겨 적고는 마음속에 삭혔다.
내 메모장에는 다른 누군가의 글이 온전히 내 글처럼 누워있다. 책으로 옮긴다면 4~5권 남짓 될 법한 분량의 메모. 메모가 아니라 글쓰기를 위한 백과사전 같았다. 나는 내 메모 속 숨겨둔 글을 보며 언젠가는 내 피가 되고 살이 되겠지라며 막연한 희망을 품었다. 내 몸속에 글은 밖에서 일어나는 부당함과 화를 삼켜냈다. 열이 오르면 오를수록 내뱉고 싶다는 열망이 피어올랐다. 압력밥솥의 압력이 차면 추가 돌아가듯 글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제서야 글이란게 조금씩 세어 나왔다. 남의 글 그대로가 아닌 나의 언어로 순화되고 정제되어 압축된 글. 나는 금고에 금괴를 쌓아둔 사람처럼 비밀 가득한 미소를 품고 다녔다.
얼마쯤 삭혔을까. 언제부턴가 메모 속에 누워있던 글들이 내 글에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같은 글이지만 다른 글이었다. 입에 착착 감겼다. 메모장 글들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넣어둔 채 살았다. 세월에 머리채 잡혀 끌려가던 중 문득 메모장 글들이 생각났다. 잊고 살았다 생각했는데 내가 비슷한 글을 쓰고 있어서 놀랐다.
나도 모르게 모방과 창작을 저울질하며 글을 써 왔음이 분명했다. 그간 가슴에 쌓아 두었던 울분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자 글의 변형을 초래한 듯했다. 연금술사가 된 기분이다. 재료는 있던 것이지만 결과물은 나답다는 생각에 마음이 순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