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기의 균형

틈틈이 읽고 쓰기

by 눈 비 그리고 바람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 했다.

그렇다면 쓰는 것은 마음의 배설이다. 둘의 조화가 적절할 때 생각의 고임과 흐름에서 균형을 이룬다. 사유에도 댐이라는 게 형성된다고 하는게 맞겠다. 가둘 때와 방류할 때를 아는 이는 너무 고여 썩을 일 없고, 너무 흘러 모자랄 일이 없을 테니까.


나는 틈틈이 읽는다. 읽는 것에는 제약이 없다. E-Book이란 걸 알고 나서부터는 틈틈이가 중독증으로 변했다. 조금이라도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손가락은 근질근질 했고 눈은 초조했다. 글 한 대 태우고 싶다는 신호인 것이다. 운전처럼 손이 묶여 있는 경우는 E-Book에 소리내어 읽어 주는 기능을 이용했다. 비록 모국어를 영어로 쓰는 외국인이 읽어주는 듯한 야릇한 억양이긴 해도 딴짓 하며 읽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글을 흡수했고 머리는 두서없는 글들로 가득차 아비규환이 되어갔다.


가만히 놓고 보면 독서는 내 모든 여유를 앗아간 듯 보였다. 시간, 열정, 쉼 이 모든 것을 허비한듯 보이지만 먹기만 하는 그런 식충이는 아니었다. 머리속 주입된 글들은 무질서 속에서 질서를 찾아갔다. 로또 기계에서 무작위로 튀어나오는 공처럼 보였지만 다 뜻이 있고 순서가 있었다. 알게 모르게 퍼즐을 맞춰갔다. 서서히 드러나는 서로의 욕망에 글이 주는 의미를 실감했다.


간혹 사소한 이유에도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열에 한두번 정도는 머리에 꼭지가 열리는 경험을 한다. 나는 바이오 리듬이니 운세 같은 건 잘 믿지 않는 성격이지만 화의 근원을 찾다 보면 결국 미지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있었다. 신체, 감성, 지성의 그래프가 바닥에 포개져 나뒹굴거나 안다치면 다행이라는 운세를 보며 놀라곤 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조용히 책 읽으며 고여있던 화를 다스렸다. 단어 한 자 한 자의 의미를 곱씹으며 울분이 피어날 이유를 잠식시켰다. 지금 상황에 딱 맞는 글은 아니지만 최소한 다른 시각으로 나를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내어줬다. 들숨이 크면 심호흡, 날숨이 크면 한숨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독서는 들숨의 크기를 키워주는 효능이 있었다.


읽기만 하다 보니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기가 쓰기를 위한 준비 운동인냥 몸이 달았다. 심장 먼 곳부터 물을 적시듯 글놀이를 위한 글을 몸에 묻혀 온것이다. 감정의 왕성함이 느껴졌다. 뭘 써야 할지도 몰랐고 어떻게 내어 놓아야 할지도 몰랐다. 넘쳐나는 의욕에 비해 초라한 필력은 머리속 글들의 비대증을 감당해야 했다.


그냥 썼다. 한 문장 쓰고나면 깜빡이는 커서가 나를 비웃는 듯했다. 글이 초라하다며 빨리 지우라는 재촉 같다. 부끄러웠다. 반평생 영어를 배워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나. 이런 처참한 현실에도 한 점 부끄럼 없이 정부와 부실한 교육 과정을 탓할 수 있었는데. 글은 어쩐지 달랐다. 정부도 선생님도 부모님도 탓할 수 없었다.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다는 말 같았다. 그동안 게을리 살아온 과거가 속상했다.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지지 않고 모르는 것은 남의 몫으로 남기는 죄를 지었나 보다. 글쓰기는 그런 죄를 쌓아온 나에게 지워진 업보 같았다.


읽으면 채워지고 쓰며 비워지는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쓰며 괴로워한다. 쓰기와 읽기 사이에 연결된 미묘한 감정선의 긴장감을 느낀다. 읽기는 쓰기를 위함인가 쓰기는 읽기를 위함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구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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