쳐지면 당겨지는 삶의 탄성에 대해서.
진심으로 그가 잘되면 좋겠다.
주변에 친한 지인이 이직을 한다. 한때는 의견 차이로 서먹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죽이 잘 맞았다. 이번에 자동차 업계쪽 대기업으로 이직한다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한껏 고조되었다. 계속 두드리면 문은 열리게 되어 있다며 충고를 빙자한 자랑이 이어졌다. 뻣뻣한 목에서 나오는 듯한 목소리가 듣기 거북했다. 속상했다. 내가 일을 해도 더 많이 했고 더 잘 했었는데. 저 친구는 저렇게 잘 나가는데 난 뭐지?
사실 난 지금 직장 말고는 갈 곳이 없다. 나의 모든 욕망을 댓가로 받아낸 인정이 삶의 허기를 매우진 못했다. 그렇다고해서 허기를 채우기 위한 노력은 싫다 한다. 남들과 비교당하는 삶은 싫으면서도 남들과 견주며 안주하는 삶을 살고자 했다. 누군가 앞서 나아가야 뒤쳐지고 있음을 인지하는 나.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이를 똥구녕으로 먹었냐는 말로 자책하곤 했다. 한참을 눌려있어 피가 통하지 않음은 통점도 차단하기 때문일까? 세월에 짓눌려 마비된 감각은 쉬이 돌아올 줄 몰랐다.
그간 변하지 않음을 한결같음으로 해석했다. 사람은 변하면 죽는다던 그 말을 믿었다. 이런 출처도 모르는 말을 내 마음 닿는대로 해석해 젊음의 불안을 버텼다. 이마에 열감을 느낄때마다 소주에 고춧가루 풀어 크게 한잔 삼켰다. 쓰디쓴 궁물을 머금고 속으로 외쳤다. ‘이거 마시면 어른. 다 그렇게 낫는 거다.’ 그렇게 눈 질근 감고 먹었다. 쓰러져 앓다가도 다음날 일어나면 신기하게도 아팠던 몸이 나았다. 젊음이 주는 치유력을 가지고 민간요법 대단하다며 손가락 치켜세우던 그런때가 있었다. 제대로된 진단을 받아 본적 없는 나. 병명도 모른채 치유력이 상실된 지금이 좋을리 만무하다.
누군가 잘되고 나서야 정신이 든다. 그의 성공이 나에게는 촉매제가 된듯하다. 웃으며 내뱉는 축하의 말과 내면을 꾸짖는 말의 간극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 그간 꾹꾹 눌러온 한결같음이 바보같음으로 촉발했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은거라 누가 했나. 이런 말에 조바심이 났다. 휴대폰 열기 때문인지 그의 자랑에 진저리 친 것인지 모를 열기가 느껴진다. 머리와 이마의 경계에는 식은 땀이 맺혀 있었다.
얼마 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나는 바랬다. 정말로 그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럴수록 내 삶에 탄성을 당겨줄 시위의 힘은 커질 테니까. 나는 당장에 느낀 이 치욕감과 나를 향한 다짐을 한 편의 글로 썼다. 시간의 치유력에 닿지 않도록 밀봉해 마음속 깊숙이 넣어둘 요량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