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에 쓰는 글
눈을 떴다.
커튼 사이로 어둠이 새어 나왔다. 밖은 깜깜하기도 하면서 깜깜하지 않기도 했다. 어둠과 밝음 사이 짓눌려 옴작달삭 못하는 세상의 소리에 귀가 멍하다. 새벽임이 분명하다. 나에게는 시계 없이도 새벽을 감지하는 능력이 언제부턴가 주어졌다.
요즘 들어 이유 없이 새벽에 깨는 일이 잦다. 특이함 없이 잠을 잤음에도 새벽만 되면 눈을 뜨는 이유가 궁금하다. 늙음에서 오는 부산함일까 아니면 하루의 질서를 점지하는 새벽의 기운 때문인가. 무엇이 되었든 나쁘진 않다. 새로운 감각이 생겨난 것이기도 하니.
예전에는 눈을 뜨면 알람이 울었다. 지금은 눈을 뜨면 새벽이 운다. 새벽의 어스름함과 고요의 경계가 섞이며 공명 하는듯한 울림이 나에게 느껴진다. 우주에 소리가 있다면 딱 지금 이런 소리겠거니 했다. 도둑고양이처럼 들어와 쓰레기를 담고 가는 차의 기계음이 이따금씩 메아리 쳤다. 새벽 소리에 깨는 날에는 이상하리만큼 수면과 의식의 경계가 선명했다. 좀 전까지 코를 골며 잠을 자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생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새벽 사용법은 간단했다. 놀란 듯 일어난 나를 진정시키는 일이 우선. 그 다음 어스름한 공간에 나를 가만히 내려놓기만 하면 된다. 얼마 후 주파수가 맞는다. 신이난 웰시코기 꼬리 마냥 발가락을 흔들어 댄다. 무어라도 해야겠다는 의지가 샘솟는다. 나는 그때 글 쓰러 간다. 어떤 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은유할 수 있을 법한 기분이 든다. 분명 새벽이 내어주는 기운은 이 세상 그 어디쯤 것임이 분명하다. 훔쳐온 듯한 능력을 발휘하는 이 기분은 짜릿했다. 새벽에 도벽이 도진 사람마냥 머릿속 이곳 저곳을 쏘다니며 생각을 훔쳤다.
생각의 찰나를 속사로 풀어낼 수밖에 없었던 나. 그만큼 삶의 격동에 지치고, 얼기설기 엮여 있는 인연을 풀어내기 어려웠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새벽은 달랐다. 잡념으로 가득한 안개가 걷히자 날렵한 생각의 고임이 보이기 시작한다. 생각의 흐름에 몸을 맡기자 시간의 흐름과 겹쳐진 글이 튀어나왔다. 술술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움직이지 않는 생각의 고임은 한참 동안 쓰고도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나를 관전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분명 입에 미소가 번졌으리라. 내가 너 그거 알려주려고 새벽에 깨웠다면서.
오늘은 유난히 글이 더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