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이 없어 못쓴데.

어쩌면 쓰기 싫은 핑계일지도

by 눈 비 그리고 바람

글감이 없다.

글은 쓰고 싶어도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피아노를 치고 싶어도 악보가 없어 연습을 못하는것처럼. ‘도레미파솔’만 누르기도 재미없지 않은가. 글쓰기도 익숙한 글만 내어 놓으면 어떻게든 쓸 수는 있다. 다만 지루함과 따분함이라는 꼬리표는 떼기 어렵다.


글을 읽고 쓰다 보니 글에 대한 매력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너무 익숙한 글을 읽으면 일기를 보는듯 재미가 없고 너무 생소한 글을 읽으면 생판 남일 같아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었을 때 유독 호응이 좋았던 글을 기억한다. 길가다 차이는 돌멩이처럼 평범한 내용 같았지만 내 무지와 부끄러움으로 점철된 글. 평범한 주제다 보니 잘 읽히기도 했고, 나의 솔직함이 살얼음처럼 시원하게 녹아있어 재미도 있다 했다. 자신도 말못했던 부분인데 내가 말해줘 오히려 고맙단다. 자기만 이상한게 아니었다며 속깊은 진심을 풀어놓는다. 그날 글쓴이와 독자가 역전되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사실 그 글은 혼자 보려고 썼던글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라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를 덜 노출시키면서도 내 마음을 남의 마음인냥 고자질하며 끄적였을 뿐인데, 그런 글이 가장 큰 공감을 얻다니. 매번 새롭고 대단한 글감이 없어 글 못쓴다던 나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그간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은 무엇이었을까? 그 글은 거대담론도 아니고 인간의 존엄을 부르짖으며 세상과 맞서려는 투쟁의 글도 아니었다. 일상의 단어로 찰떡 같은 공감을 얻고자 했고, 그런 글을 쉽게 써내려 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펜을 들지 않았던가? 글감은 먼곳에 있지 않았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내 주변에 일어나는 생태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에 집중하기 보다 당연한 것이 나에게 스며들 때의 감각을 느꼈다.


늦은 밤 가족을 위해 운전대를 잡는다는 어느 대리기사님의 푸념, 당근마켓에 올려뒀던 운동기구를 사가시면서 몸 불편한 딸 좋아하겠다며 사용법 물어보시던 할아버지의 미소, 인터넷 뉴스로 간간히 접하는 영혼 맑은 사람들의 선행, 딸아이의 삐뚤빼뚤한 편지글까지. 그간 돈과 시간에 쫓겨 시선 밖으로 밀려났던 일들이 서로의 욕망을 숨긴 채 나를 밀어준다. 이런거 글로 쓰면 된다며 속삭이는 듯했다.

그동안 막혀 잘 써지지 않던 글에 단어가 놓이기 시작했다. 추상적인 표현 같으면서도 구체적인 생각을 담아낸 글들이 쏟아졌다. 행간과 자간에 빠져 무아지경에 이른 나를 본다. 일상에서 오는 평이하고 소소한 고백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밀도를 더해줄 글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글이 주는 내밀한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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