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에 인턴이 들어왔다.
등받이에 닿지 않는 허리, 정면만 응시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잘해보겠다는 다짐, 잘할 수 있다는 의지가 모든 관절에 각을 잡는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다는 증거다. 어슬어슬한 아침 공기가 인턴의 경직을 더 부추겼다.
가벼운 아침 인사를 건넸다.
그는 벌떡 일어나 경쾌하지만 무거운 90도 인사로 보답한다. 내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내리꽂는 인사에 간절함이 느껴졌다. 덩달아 나도 허리가 내려갔다. 주변 시선을 의식하며 얼른 자리를 피했더니 턱밑까지 쫓아와 다시 인사한다. 내가 인사받는 모양새가 매끄럽지 못했나 보다. 맞절하듯 주고받는 인사에 서로의 어색함만 더했다.
자리에 앉았다.
익숙한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으면서도 심장은 익숙하지 못했다. 새로운 인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가 아니면 과한 친절에서 오는 자아의 거들먹거림인가. 갈 곳 잃은 감정선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한참 동안 매만졌다. 좋은 것 같으면서도 피하고 싶은 야릇한 감정, 결국 부담스러움의 일종으로 분류하고 만다.
몸에 힘이 들어가면 잘 안되고 있다는 뜻이다.
체육선생님이시던 아빠의 한마디가 문득 떠올랐다. 그렇다고 인턴이 능구렁이처럼 자연스럽게 지금의 상황을 받아냈다면 어땠을까. 분명 너무 건방지다 했겠지. 경직이 싫다 하면서도 경직을 요구하는 자신에게 꼰대를 본다.
요즘 내 글에도 힘이 들어가고 있다.
의무로 등 떠밀 린 글쓰기와 이왕이면 잘 쓰겠다는 의지가 만나 뇌와 손가락이 뻑뻑하다. 뭐라도 써야 하는 상황을 추상적이고 모호한 글로 돌파했다. 나도 잘 모르는 내 맘을 아는 듯 밀고 나가는 글이란. 자소서를 쓰는 기분마저 든다. 이게 옳은 일인지 나 자신에게 묻는다.
처음 글 쓰던 나를 본다.
아니 처음 나를 썼던 글을 본다. 어디에 힘을 줄지 몰라 행간에서 의미가 흩어진다. 힘을 빼고 써 내려간 글이 아니라 힘이 없는 글이다. 글을 읽고 쓰다 보니 조금은 알 것 같다. 힘이 들어간 글, 힘이 없는 글, 힘을 빼고 쓴 글에 좋고 나쁨이 있다기보다, 그런 정도를 감지하는 촉수를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없는 자에게는 있음을, 과한 자에게는 내려놓음을 알려주는 글이 유용하듯, 나름의 힘을 안배하고 감지하는 능력을 가지면 좋겠다. 언제든 어떻게든 자신에 맞는 글을 읽거나 써내려 갈 수 있을 테니. 사랑이 돌아오듯, 글도 돌아오겠지.
다른 동료가 오자 인턴이 접히는 모습을 본다.
당황하는 동료와 힘이 넘치는 인턴을 따라 웃음꽃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