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강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면

by 눈 비 그리고 바람

얼음 위를 운동화로 내달린다.

한파와 강바람이 만나 칼바람이 분다. 귀 끝이 따갑다.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부딪치는 행위가 일상적인 이곳. 여기는 자연이 강물로 만든 유기농 썰매장이다. 그간 감기와 한파에 짓눌린 설움이 콧물과 함께 녹아내렸다.


사실 나는 강에 대한 트라우마가 다.

어렸을 적 일이다. 여름 어느 날, 우리 가족은 피서지로 인적이 드문 강가를 찾았다. 근교이면서 물놀이와 채집을 동시에 할 수 있었던 은혜로운 그 강가. 우리만의 여름 휴양지라며 으스대던 곳이다. 바닷가 해변에만 있을법한 보드라운 모래에는 여름만 되면 조개가 주렁주렁 맺혔다. 뻐끔 뚫린 구멍에 손만 넣으면 조개가 올라왔다. 신기했다. 그날은 유독 더 큰 조개를 잡고 싶었다. 헨젤과 그레텔이 빵부스러기를 남기는 심정으로 모래에 난 구멍들을 주워나갔다. 가족과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분명 물이 찰박하게 잠긴 모래 위를 내디뎠다. 발이 계속 들어갔다. 발을 딛고 서야 할 곳에 발이 들어가는 기분이란, 보는 것과 느끼는 것의 괴리감이 크면 공포감이 커진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이제 죽는구나 싶었다. 만화에서만 보던 늪은 천천히 빠져들어 만만했는데, 소리 지를 틈도 없이 빠지는 몸을 보며 믿을 놈 하나 없다며 탄식했다. 모래가 허리춤까지 차올랐다. 발끝에 딱딱한 무언가가 닿는다. 순간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어떻게 힘을 준건지도 모르겠지만 죽을힘을 다한다는 것은 의지와 상관없이 발휘되나 보다.


늪에서 머문 몇 초가 같았다.

세상이 보여준 공포에 짓눌려 며칠간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이 사실을 어딘가 말하세상은 다시 나를 그 공포의 늪으로 데려갈 것만 같았다. 직관적으로 알아차렸다. 아니 직관적으로 겁을 먹었다. 또 공포에 잠식되어 무기력한 나를 관전하기 싫었으니까. 그때부터 나는 강물에서 부서지는 물결과 반짝이는 모래만 보면 몸서리친다. 침묵을 강요하라는 수신호 같다. 옆구리가 쿡 찔린 나는 모래 속에 끌려가던 느낌을 산채로 토해냈다.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것이다.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얼어붙은 강 위를 짓밟으며 웃고 있다. 아무렇지 않은 나와 우연히 마주했다. 트라우마도 공소시효란 게 있는 것일까 아니면 강이 보내는 신호를 잊은 것일까. 무엇이 되었든 나에겐 중요하지 않다. 그때의 만행을 복기하며 글로 옮길 수 있다는 사실에만 집중할 뿐. 그간 빼앗겼던 강, 함께 포개어 두었던 감정들이 살아난다. 쓰면 쓸수록 내 것이 되는 상황이 그저 놀랍다. 온몸에 전율이 인다.


두려움을 극복하자 매운맛이던 세상이 순한 맛도 내어준다. 맛보면 안다. 다른 두려움은 없었는지 찾아보게 된다는 사실을.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