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회로를그리거나 소자 떼었다 붙이며 제품의 수명을 설계한다. 밤이 되면 글을 쓴다. 문장을 구상하고 단어를 떼었다 붙이며같은 일을 반복한다. 둘 다 고심하기는 마찬가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에서의 만나는 고통은 어디에서나 비슷한 공력을 요구한다.
땀 흘리고 먹는 밥은 꿀맛, 일하고 쓰는 글은 죽을 맛이다. 누군가를 위한 제품 만들기에 녹아버린 나. 그런 나를 다시금 글쓰기 앞으로 데려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또 다른 창조를 갈구하는 활동을 하루의 순환에 넣어버린 이유가 궁금하다. 삶의 주인은 나지만 하루의 주인은 내가 아닌듯한 느낌. 짜인 틀에 차례로 맞춰야 나오는 금고 속 금괴처럼 아득한 철문 앞을 서성이는 나를 본다.
하루종일 일에 시달리면 몸이 나른하다. 삶에 부사가 빠지고 동사만 남은 느낌이다. 나약하지만 꾸밈없는 상태에서 나오는 글이 나는 좋다. 거짓 없이 놓여진 담백한 글, 삶의 애환이 녹아나는 꾸덕꾸덕한 글. 고통의 체망을 막 통과한 그런 글이 주는 감수성이 즐겁다. 내 글의 첫 독자가 되어 나다운 설움을 읽으며 나다운 응원을 이어간다. 건빵을 씹느라 말라붙은 입에 별사탕을 씹는 기분이랄까. 달달하게 씹히는 애증은 내일을 이어갈 침샘을 자극하니까.
적당히 살만한 하루에 내어놓은 적당한 글보다 겨우 이어가는 하루의 연속에서 묻어나는 절실함을 담고 싶다. 나를 표현하는 얇은 가닥이 언젠가는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아 단단한 하루를 붙여갈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