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고 싶은 글

독자가 원하는 글

by 눈 비 그리고 바람

요즘 회사에서도 단문을 쓴다.

이메일 쓸 때도, 보고서 작성 시에도, 메모할 때도 단문으로 쓰는 일이 잦아졌다. 부사를 골라내고 쉬운 글로 쓰겠다는 의지가 모든 글에 녹아난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의식하고 녹아내진 않았다. 나도 모르게 이어진 글쓰기 호흡이 회사까지 닿는 줄 몰랐다. 그 사람이 말해주기 전까지는.


얼마 전 타 부서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주 연락하지는 않지만 간혹 메신저로 안부정도 묻는 사이다. 대뜸 하는 말이 며칠 전 보내준 보고서가 좀 이상하단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사치레로 던지는 농담인 줄 알았다. 돌려서 말하긴 했지만 같은 지점에서 말이 빨라진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내용인즉슨 문장이 짧고 쉬워서 전문성이 떨어져 보인단다. 순간 흠칫했다. 왠지 그것 때문인가 싶었다. 촉이라는 게 검열보다 생각이 빠를 때 생기는 반사적인 느낌인데 지금이 딱 그렇다.


설마 하는 생각으로 보고서를 열었다.

짤막하게 끝나는 문장, 잡스런 단어 없이 간결하게 밀고 나간 흔적이 보인다. 아차 싶었다. 보고서를 이렇게 쓰다니. 그날 바쁘다고 퇴고 없이 보낸 게 화근이었다. 실수라고 생각했던 부분에서 후회가 밀려왔다. 그만큼 반감도 크게 작용했.


'단문이 잘못된 문장은 아니잖아.'

'쉬운 문장이 어때서? 보기 좋구먼.'


본디 공적인 보고서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외래어가 많다. 이원화, 일원화, 획기적, 지양, 지향, 투트랙, 딥다이브, 니즈, 등등. 이런 단어가 끝도 없이 엉겨 붙어 있다. 여기에 전문 약어까지 더하면 지성과 교양을 갖춘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소위 높은 분들이 좋아할 만한 글, 출세하려면 써야 하는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어 대부분의 원산지는 수입이고 조사와 어미만 남아 한국어임을 유추할 뿐이다. 같은 글이지만 외국어를 접하는 기분이다.


과연 이런 글이 옳은 글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아마도 내가 원하는 답은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존엄은 위대한가 와 같은 당연한 답을 갈구하는 모양새가 구차하다. 실수를 인정하면 끝나는 일인데, 내 글에 대한 못마땅함이 가족을 힐난하는듯한 말투로 들려왔다. 말에 가시라도 있는지 가슴속에 콕콕 박혔다. 나도 그도 글도 다 원망스러웠다.


그날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했다.

글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사유의 저장, 분풀이, 의사전달, 공부, 무수히 많은 쓰기와 읽기의 이유가 충돌한다. 쓰기 위해 읽는 것인지 읽기 위해 쓰는 것인지 모를 기로에서 선 나를 본다. 나는 글을 왜 쓰는 것일까? 독자가 없어도 쓰기를 유지할 수 있을까란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한다. 나를 위한 글쓰기라며 쓰는 거 별거 없다며 떠들어 대며 강한 척하던 내가 부끄럽다. 글감을 고민하고 어떻게 써야 쉬운 글이 될지 고통받는 지점을 찾아가던 중 어떤 울림이 왔다.


절대적으로 좋은 글이란 없나 보다.

또한 누구에게나 좋은 글도 없기는 마찬가지. 고통을 자처하며 악착같이 쓰는 이유가 독자에게 술술 읽히기 위함이라면 어느 정도 답은 보인다. 글쓰기가 힘든 이유는 이 글을 읽을 독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는 그런 독자에게 무엇을 내어 줄 수 있을지가 서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관통하는 글과 회사에서 산출되는 글의 간극이 크다며 징징대던 나에게서 부족함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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