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써지는 글 쓰기

쓰면서도 쓰고 싶은 나에게

by 눈 비 그리고 바람

글이 안 써지는 날이 있다면 바로 오늘을 말하는 거겠지. 엉덩이로 써보고 오기로도 써봤지만 안 써지는 데는 변함없다. 오히려 한 줄 쓰고 두줄 지우는 상황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퇴고가 아니라 쓰기가 점점 퇴보하는 느낌이랄까. 읽으면 없어지는 내 글처럼 나도 곧 소멸될 것만 같았다. 매번 갱신되는 안 써지는 고통이 이제는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쓴다는 일은 참으로 희한하다. 잘 안 써지는 날이 있으면 잘 써지는 날도 있기 마련인, 현실은 이런 사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써도 안 써지는 날과 죽어도 안 써지는 날로 구획될 뿐이니까. 무엇이 나를 쓰는 삶으로 던져버린 걸까? 이왕이면 잘 쓰는 법도 같이 넣어주지. 유치한 소원이라며 피식 웃다가도 진심임을 알고 정색하곤 다. 나는 결국 쓰기를 넘어설 수 없을 거란 막연한 걱정이 현실이 될까 불안하다.


요즘은 쓰면서도 쓰고 싶다 한다. 나도 나를 모르겠고 일단 쓰기는 해야겠다는 의무감이 빈 껍데기 같은 글을 양산하는 모양이다.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나에게 사춘기는 성장통으로 뒤척이던 시절 투성이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배가 고팠고 잠을 자려 눈을 감으면 사지가 끊어질 듯 아파왔다. 먹어도 차지 않는 허기와 육체적 고통이 외적 성장을 도모했다면, 지금 느끼는 쓰기의 허기와 정신적 고통이 내적 성장을 촉발할 것이라 한다. 막연한 기대감에 몸을 맡길 뿐이다.


지금 나는 하루치의 글을 쓰고 하루치의 안도감에 살아간다. 오늘의 만족이 내일의 불안을 감당하지 못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부단히 쓰는 것만이 당장의 찝찝함을 잠시나마 잊게 할 뿐이다. 도구를 동원해 알 수 있는 키와 몸무게처럼 쓰기의 근력도 눈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어제 아프고 오늘 아프더라도 언젠가는 삶을 견인할 근력이 생긴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실낱같은 희망도 희망이라면 인내로 삶을 받아낼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계속해서 쓰다 보니 요령이란 게 생기긴 하나보다. 쓰면 아프지만, 그 통점의 근원을 글로 더듬는 걸 보니. 쓰기의 이중성과 모순을 조금은 아는듯한 눈치다. 싫어도 꾸역꾸역 출근하는 이유가 꼬박꼬박 들어오는 통장의 월급이듯, 글쓰기도 같은 이치 같다. 싫어도 밀고 나가는 글이 나를 끌고 가는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 삶이라는 것은 세상의 모순을 자기 방식대로 오해하고 마는 과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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