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냐 글이냐

MBTI가 변했어요

by 눈 비 그리고 바람

나의 MBTI는 ENFP다. 스파크형이라 하기도 하는데 사전적인 단어뜻만큼이나 그 특징도 발랄하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즉흥적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며, 적응력도 좋다. 무엇보다 스스로 광대를 자처하면서까지 사람 만나기를 좋아한단다. 나는 정말 그랬다. 애증의 글쓰기를 만나기 전까지는.


얼마 전 인터넷으로 MBTI 검사를 했다. 이번에도 ENFP가 나오겠거니 했다. 결과를 보고 흠칫 놀랐다. 5년 동안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MBTI가 바뀐 것이다. 앞자리가 외향형을 뜻하는 E에서 내향형을 뜻하는 I로의 전환. INFP라는 결과에 한참 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내 이름의 성이 바뀐 것처럼 난감했고 생소했다. 나는 나를 수정해야 하는 이유를 더듬어 갔다. 쓰는 삶과 쓰지 않던 삶 그 어딘가 즈음으로.


나는 누구를 만나 대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쟁여둔 내 마음 보여주고, 남의 마음 흘긋 본다. 각자의 생각과 느낌이 묘한 원리에 의해 교환된다. 서로 다른 욕망이 내통하며 수렴하는 감정선 사이로 흡족해하는 나를 본다. 더 나은 나를 확인했다는 생각에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관계가 곧 나고, 나의 본성을 알아주는 수단이라 생각했다. 나의 사사로운 욕망은 타인을 초월할 수 없었다. 그런 속박 속에 삶의 변덕을 다독였다. 누군가와 어깨를 견주며 같은 처지에 있어야 비로소 안도했다. 숙제를 하지 않아 혼나더라도 혼자만 아니면 된다던 그 아이는 관계의 촉수를 키워 사회로 나갔다. 그는 혼자됨을 경시했고, 괄시했다. 혼자됨이 삶의 가난을 촉발한다 믿었다.


얼마 전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그들의 점점 커지는 말소리에 내 의식의 소리는 희미해져 갔다. 다른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만 겨우 들려올 뿐이다. 나는 투명한 공에 갇혀 허공으로 떠올랐다. 누군가는 이따금씩 나를 향해 말하고 웃으며 잔을 권했지만 나의 진심에 닿지 못했다. 나는 최소한의 관계를 위한 방어 기제만 작동할 뿐, 소통을 위한 의식과 의지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이 보내는 욕망이 나를 비켜가길 원했다. 술이 없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 관계 속에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은 없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누워 책을 보다 잠들고 싶었다. 익숙한 책상에 앉아 익숙지 않은 글을 쓰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일방적인 의식의 소비를 막아야 했다. 삶의 우위를 지켜오던 관계 속에 나는 나를 밀어냈다. 사람이 싫어서, 피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나를 지키고 싶음이었다. 그동안 내가 느끼는 관계의 불안은 다른 이와 나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감 때문이 아니라 나와 나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일방통행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으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 혼자 쓸쓸하게 늙어갈 거라는 막연한 미래의 불확실성의 목소리가 잦아든다. 어떤 책을 읽고 싶고, 어떤 글감으로 쓰고 싶다는 구체적인 의지가 내면의 목소리를 대신한다. 새로운 감각이 살아나는 기분이다.


하릴없이 평온한 주말 오후.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사서 집에 가는 길에 매화꽃을 본다. 집에 가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웃음이 번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