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뒤척이며 아파했다. 나는 매일 같은 글, 같은 고통을 토해 냈다. 고통의 빈도와 정도만 다를 뿐, 글에다 욱여넣는 목소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 아프다 하면서 왜 같은 말만 반복하는 것일까? 아프면 쓰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쓰다 아프면 그만 두면 될 것인데. 나는 왜, 안 써도 되는 글을 가져와 머리 한편을 내어주는 것일까.
삶이 고단했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과, 늘어만 가는 나이 그리고 책임감에 눌려 납작하게 살았다. 나는 삶이 내어준 압력을 감내할 수 있는 그런 어른이 아니었다. 아직 아이였다.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누구도 말해준 적 없었다. 스무 살? 군대? 취업? 결혼? 남자라면 응당 밟아야 하는 사회적 통념 속에 나를 갈아 넣었다. 돌아오는것은 무성의한 대답과 냉소뿐.나는 좌절했다. 나도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저 그런 나를 인정해야 했다. 지금껏 살아오며 이룬 것이 무엇이고, 이뤄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물을 마셔야 갈증이 해소된다지만 그런 갈증조차 느낄 힘이 없었다. 무기력만이 당장의 나를 대신했다. 응당 고개만 들면 있어야 할 별과 달이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 내뿜는 어눌한 빛마저도 나를 비켜갔다. 암흑 속에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사람이 싫었고, 내일 다시 떠오를 아침이 싫었다. 당장에 배가 고프고 잠잘 곳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만이 나를 부여잡고늘어졌다.
나는 이런 암덩어리 같은 생각을 토해내야 했다. 그래서 글로 썼다. 아무 말이나 써내며 당장의 숨통을 틔였다. 어떻게 쓰다 보니 나아졌고 나아지니 살만 했다. 언젠가 또 나를 집어삼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삶에서 도려내고 싶었던 어둠이 싫었다. 나는 그때부터 의무적으로 썼다. 처방으로써의 글이 아니라 예방으로써의 글을 써냈다. 잠시라도 글이 멈추면 나를 잃어버릴까 두려웠다.
글은 나의 거울이다. 내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비춰주고 알려준다. 삶에 굴레에 던져진 나를 알아챈다. 나의 표정을 살피고 속마음을 비춰준다. 이제는 어둠 속에 패대기 쳐진다 해도 두렵지 않았다. 어디서든 글만 있으면 나를 찾아낼 수 있겠다 싶었으니까. 망각 속에 숨어 보이지 않던 삶의 변곡점이 별이 되어 나를 비춰주니까. 그런 흔적이 글이 되어 나의 궤적을 알려주고 밀어준다.
즐겁고 좋은 일만 가득하니 글을 안 쓰게 된다. 뾰루지가 나면 거울도 보고 만지며 계속 감각하게 되지만, 낫고 나니 그럴 생각이 들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괜히 할 말이 없으니 백지 앞에 앉아 글 투정이나 부리며 징징대는 나를 본다. 나는 알고 있다. 진정한 고통이 무엇이며 작은 행복 다음 어떤 불행이 닥칠지를. 나는 글을 쓰며 나에게 고통을 접종한다. 감당할 만큼의 고통을 조금씩 주입하며 언제 있을지 모를 불안함을 아무렇지 않음으로 대신하려 했다.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행복을 행복만으로 채우고 싶지 않았고 고통을 고통으로만 인내하고 싶지 않았다. 글이 주는 아픔과 희열에서 삶의 순환을 받아낸다. 오늘도 창작의 고통을 주입하며 글이란 걸 쓴다. 당장 내일 있을지도 모를 불우함에 대비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