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서 해가 저물길 바랐다. 추울 때는 빨리도 들어가 숨더니 날이 더워지니 자기도 힘이 부치긴 한가 보다. 옆동네 뒷동산에 끼여서는 한참 동안 끙끙대는 걸 보니. 뿌옇게 질려버린 하늘에 빛바랜 붉은색이 애잔하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며그 맘 안다고 혼자 중얼인다.
오랜만에 얇은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밖은 어둡지만 춥지는 않았다. 밤이 되면 춥다는 통념을 깨는 따스한 어스름이다. 매년 겨울은 가고 봄은 왔지만 추위에 굽어진 몸을 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일 년처럼 길게만 느껴진다. 겨우내 받아낸 따스함을 느끼고 싶었다. 그런 따스함에 매료된 자연을 만끽하고 싶었다.
밤바람에 풀어지는 풀내음은 산뜻했다. 숨을 크게 들이켰다. 짙푸른 잔디를 한 움큼 떼어 입에 문듯한 쓴 기운이 따스하게 스민다. 그간 마스크를 관통하며 약품냄새로 절여진 세상의 냄새에 진저리 치던 찰나였다. 생명이 움츠렸다 촉발하는 냄새에 쉬이 매료됐다. 강가를 뛰노는 아이처럼 발걸음은 설렜고 보폭은 짧았다.
오늘은 글을 쓰지 않았다. 봄꽃 휘날리던 따스한 봄날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웠다. 원래 사람 많은 곳은 오염되었다며 집에서 혼자 글이나 쓰며 보내려고 했다.창 문 밖에서 일렁이는 꽃잎들의 나부낌을 봤다. 지금이라도 나오라는 손짓이 분명하다. 해가 늘어지며 색이 바래자그간 참아오던 인내심이 바닥난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집에서 조용히 사색하며 자신과 대화나 나눈다고 해서 글은 써지지 않는다.때로는 '나는'으로 시작하는 삶에 짓눌린 문장보다 자연과 인공물 사이 벌어지는 내밀한 목소리가 더 듣고 싶었다. 결국 나는 야외 체험학습을 자처한다. 자연에 내려앉은 봄의 눌림을 보고 싶었다. 그런 봄을 글로 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