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생각 담기

쓰면 쓸수록 달라지는 내 생각에 대해서

by 눈 비 그리고 바람

처음 글 쓰던 때가 생각난다. 머릿속은 타자연습 게임처럼 생각의 파편들이 쏟아져 내렸다. 인식은 있지만 글로 옮길 줄 몰랐다. 문맹은 아니지만 글을 쓸 줄 몰랐다. 너무 답답했다. 흘러내리는 단어 앞에 독수리 타법으로 응수하던 그때의 무력감이 다시금 떠오른다.


고통에 매몰되고 악에 받쳐 눌려버린 에스프레소 같던 나의 이야기가 글로 옮기면 어쩐지 식어버린 보리차처럼 밍밍해져 가는 현실이 슬펐다. 낙서 같은 끄적임 뿐이다. 처음 느낀 감정은 이게 아니었는데. 내 마음 나도 모르는 것인가 아니면 글이란 걸 쓰다 보면 마음이 변하기라도 하는 것인가 긴가 했다. 쓰다 보면 아픔에 각인된 마음의 상처를 기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때를 곱씹으며 앞으로의 삶에 연료로 땔 수 있을 줄 알았다. 처음 글이라는 것을 써보니 기억은 되지 못하고 쓰기의 아픔만 남더라.


있는 그대로를 쓰고 싶었고, 하고 싶은 말을 내뱉고 싶었다. 머릿속을 맴도는 관점과 생각은 가득한데 쓰면 쓸수록 다른 것이 되어갔다. 다 큰 어른이 받아쓰기도 못한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어디선가 본 듯한 문장만 입에 붙어 맴돈다. 타인의 문장을 끌어다 내 글에다 씌웠다. 쓰면 쓸수록 내 생각은 온전함을 잃어갔고 익숙함에 변질되어 갔다. 상투적인 글로 나를 풀어 갔다. 책을 많이 읽으면 글과 친해져 쓰기에 좋다지만 그만큼 눈에 익은 문장들로 내 글이 채워지는 게 영 씁쓸했다.


글 쓰기란 자기 생각 표현하기가 기본값이다. 자신의 머릿속을 부유하는 생각들은 내 것이 아니다. 무엇으로 형용되기 전까지는 그저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번민의 이유일 뿐. 그런 108 번뇌 같은 이야기들을 조금씩 써나가기 시작했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다시 쓰기를 수십 차례. 어떻게 쓸지에 대한 고민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와 그런 이유가 되는 글이 왜 다른가에 대한 고찰로 하루를 채워 나갔다.


쓰다 보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왜 글쓰기가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지는지를. 그건 아마도 자신이 쓰고자 하는 생각이 몸속에서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쓰기에 대한 표현력 부족만은 아니었다. 처음 내가 글을 쓰고자 했을 때를 기억한다. 어떤 주제로 써야겠다만 정했지 어떻게 이야기하며 어떤 이야기로 풀어갈지 나도 몰랐던 것 같다.


자신의 생각과 글은 교환된다. 생각과 글의 교환비는 10 대 1 정도 되지 않을까. 아니면 100대 1이 될 수도 있고 1000대 1이 될 수도 있다. 글은 그만큼 자신의 생각을 전력으로 갈아 넣어도 단 몇 장의 분량으로 축약될 뿐이다. 설익은 딸기를 가지고 달콤한 딸기잼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칭얼대던 나를 본다. 책 읽고 글만 많이 쓴다고 해서 글력은 저절로 커지지 않는다. 이런 엄정한 사실 앞에 좌절한다.


좋은 글쓰기란 무엇일까? 충분히 무르익은 생각을 담백한 글로 한 접시 차려 주는 것. 아니면 잔뜩 겉꾸민 접시에 남이 한 입 베어 먹은 듯한 설익은 생각을 내어 놓는 것. 답은 이미 정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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