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 열이라는 것이 멈추지 않는다.
지금껏 살아왔던 삶을 날로만 먹어서 그런 것일까? 내려앉지 않는 열은, 삶에 익음을 더해 갔고 한층 더 깊어진 고뇌에 맛을 알려주려는 듯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하기만 하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만큼에 아픔은, 한번만이라는 암시로 겨우 용납될 뿐이다.
온몸을 망치로 내려친 것 같다. 근육이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고,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 밀려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사유에 이유도 멈추고 말았다. '나' 자체가 그저 아픔을 감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즈음으로 간주될 뿐이다. 생각이란 것이 머릿속 어딘가에 잠시만 스쳐가도, 전기가 흐르는 듯 따끔거렸다.
이렇게 아픈 와중에도, 찰나에 순간들은 나에게 글감을 던져줬다.
이것도 써보고, 저것도 써보고, 이렇게도 써보라 한다. 열로 인해 뇌가 익어 가는구나 싶었다.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없겠더라. 누워서 오들오들 떨고만 있던 나에게, 글이라니,,,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란 말인가.
열은 나를 침대 밑으로 한없이 끌고 내려갔다. 온몸의 통점이 동시에 자극되어 마비라는 것이 오면서도, 나는 글에 대한 탐욕을 버리지 못했다. 그간 겪었던 정신적인 고통이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일까?
날이 선 누군가에 말을 오롯이 나의 감정으로 받아 내던 날, 무례함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웃음으로 얼버무렸던 날들이 생각났다.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지만 혼자만에 시간이 찾아오면 가슴이 미어지는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은 무능한 나 자신을 탓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글이라는 것을 쓰기 시작했고, 눈물로 채워 가던 하루가 글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응어리진 가슴에 통증이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하더니, 다시 활기를 찾아가는 나와 대면할 수 있었다. 그 어떤 방법을 다 써도 치유되지 않던 마음에 병과 불면증이 호전되고 있다니, 놀라운 진전이었다.
고통으로 울고 불고 난리를 치던 와중에도,
글을 쓰면 통증이 멈춘다는 것을 경험으로써 알게 되었다. 몸은 아픈데 마음이 몰라주거나, 마음이 아픈데 몸이 몰라주는 경우에 통증이 생겨 난다는 것도 깨우치게 되었다. 우연 또는 시간에 힘이 아닌 온전히 글에 힘으로 치유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고무적인 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몸은 이런 사실은 나보다 먼저 깨우치고 있음이 분명했다. 어디 아프기만 하면 글이라는 카드를 꺼내 드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는 집념이 대단한 아이 같다. 아픈 와중에 이런 나의 의중을 알아버리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글을 쓰기 위한 적합한 정신과 신체는 아니다. 꽤나 시간이 흘렀음에도 글을 읽는 것조차 아직 버겁다. 하지만 무엇이라도 해보겠다는 자아에 노고를 뭉개버릴 순 없었다. 정말로 글을 썼다가 안 아파지면 어쩌지 라는 호기심이 나를 책상 앞으로 부추겼다. 천연두 백신의 발명이 우연으로 시작된 것처럼, 순순한 호기심에 끝은 새로운 결과를 물고 오는 경우도 있으니깐.
오늘 하루는 호기심으로 채워보고, 글로써 마무리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