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없던 글

쓰기란 우연히 찾아왔다.

by 눈 비 그리고 바람

내 인생에 글이란 없었다.

이렇게 책상에 앉아 고민하며 글을 쓰는 내 모습이 아직도 생경하다. 나는 왜 글을 쓰는지, 써야 하는지도 모른 채 아파했다. 단지 써야지만 나를 땅에 발 붙일 수 있을 것 같았고, '나'라는 존재의 흔적을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학창 시절 선생님께 맞기 싫어 반성문을 썼다. 재생용지에 내가 저지른 잘못 쓰고 또 썼다. 그렇게 쓰다 보면 내가 거의 닳아 없어지는 경험을 다. 눈물자국으로 얼룩진 잿빛의 냄새나는 종이가 싫었고, 대가리만 누르면 침샘이 마르지 않는 샤프가 미웠다. 손목부터 저려오는 힘줄의 비틀림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반성문 쓰며 느꼈다. 내 행동에 대한 반성 이라기보다는 쓰기에 대한 반감, 선생님에 대한 반항, 권리 없는 책임감을 강요받는 학생의 울분이었음을.


대학교 입시에 논술이 생겼다. 지금껏 배움의 과정 중 글쓰기 과목은 없었다. 방과 후 활동으로 독후감 쓰기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산만한 아이들이 모여 잡담이나 하는 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내가 대학 입시를 위해 논술이란 걸 해야 하다니. 어른들의 정치 놀음이라며 피해자를 자처했다.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하니까 세상을 욕하면서도 몰래 책 보며 독학으로 글을 썼다. 글쓰기도 해볼 만하다며 끄적이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결과는 낙방. 고만고만한 친구 몇몇은 붙었다며 좋아했다. 낙담하며 포기한다던 친구는 붙었고, 혼자 뒤척이며 글 쓰던 나는 눈물을 삼켰다. 그들의 합격을 축하하면서도 속으로는 다 운빨이라며 삶의 얄궂음을 탓했다.


취업을 위해 자소서를 썼다. 나에게 있지도 않았던 경험을 끌어다 내 것처럼 썼다. 자소설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이름 붙인 사람 상 줘야 한다며 혼자 웃었다. 쓴웃음이다. 해보지도 않았던 봉사활동을 했다고 써야 했고, 가보지도 않았던 기업의 체험 학습을 해봤다고 써야 했다. 회사 이름만 알았지 어떤 일을 하는지, 사훈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벼락치기로 공부했다. 국민학교 교실 칠판 위에 붙어 있었을 법한 액자 속 급훈 같은 말들이 기업의 이익을 부르짖는 기묘한 문장들을 외웠다. 그런 지루한 문장들을 쓰고 외우다 보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게 나의 존재를 묻던 중 인사팀에서 메일이 왔다. 또 낙방이다.


매 순간 글이 벽이었다. 글은 다음을 위한 다리가 아니라, 다음에 없을 좌절을 쌓았다. 글이 싫었다. 과거의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기억 저편에는 항상 글이 웃고 있었다. 이번 생은 글과 맞지 않다며 다음생을 기약해야 했다. 쓰기는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외에는 더 쓰지 않겠다며 다짐했다. 세상은 글 못쓰고 안 쓰던 나를 미끼 삼아 마음껏 부려먹었다.


세월이 흘렀다. 취업을 했고 결혼도 했다. 아이도 낳았다. 글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며 거들먹거렸다. 어느 날 삶에 대한 회의감과 우울감이 봇물 터지듯 밀려왔다. 그간 몸속에 곪아있던 상처가 터진 듯했다. 늘 해오던 일과 관계의 부질없음에 눌려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여름과 겨울이 오가며 겉옷의 두께만 바뀌던 찰나. 참고 버티며 무료하던 삶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깨닫는다. 퇴근길, 잠시 정차한 신호등 앞. 쉼 없이 돌아가는 레미콘을 본다. 지금 너는 이렇게 돌다가 굳어갈 운명이라며 나를 비웃는 듯했다. 누군가가 레미콘을 전달자로 나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음은 아닐 테지. 그것은 나의 소리였다. 내 마음에서 울리던 구조 신호였다.


나는 글을 썼다. 글이 나와 맞지 않다는 것도, 나를 위로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썼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단어를 증명이라도 하듯 호기롭게 나간 가출 소년이 온갖 풍파 다 겪고 집에 돌아와 반성하는 이야기를 몸소 체험했다. 자존심 상했다. 당장 숨 쉬고 지친 몸 뉘일 곳이 필요했다. 처음 몇 줄 쓰자 목구멍으로 손가락 넣는 기분이 들었다. 굴욕의 쓴맛이 식도를 타고 혀의 미각을 자극했다. 그래도 계속 썼다. 쓰다 보니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고 자조적인 말들이 꼬리를 물고 나왔다. 쓰면 쓸수록 갱신되는 나의 밑바닥이 그저 놀라웠다.


그동안 찌꺼기로 막혀 있던 엔진이 돌아가며 매연을 토해내는 떨림이 느껴진다. 목구멍에 막혀있던 오염된 토사물 같은 것들이 튀어나왔다. 헛구역질과 구토를 반복했다. 목에서 올라온 검은 물이 빠지자 무서울 것이 없다는 기분이 만연하다. 더 이상 감출 것도 망가질 것도 없었다. 속 시원하게 글로 써내고 나니 세상에다 파산신청하고는 '그래서 어쩌라고' 하며 따지는 기분이 들었다. 죄짓고 살다가 들켜서 배 째라는 기분이 아니었다. 죽도록 열심히 살았지만 나아지지 않는 삶에 대한 분노였다. 쓰다 보니 나에게 묻고 싶었고, 세상에다 따지고 싶었다. 길을 벗어나는 삶을 살지 않았지만 논두렁 한복판에 집 짓고 있는 듯한 내가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글은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지 않았다. 묻고 답하고 수긍할 수도 있음을 고통의 대가로 맞바꾸었을 뿐. 내 한 몸 비집고 들어갈 곳 없어 보이는 촘촘한 세상도 글이라는 렌즈를 들이 밀면 느슨한 틈서리가 보였다. 사는 거 쓰는 거 얄궂다던 어릴 적 그때가 떠올랐다. 처음부터 나를 가로막던 글이라는 벽은 어쩌면 높디높은 디딤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예정된 일인 것 마냥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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