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4월의 토요일, 늦은 오후.
황사와 봄비로 얼룩진 도로를 지나 집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요즘은 안개가 낀듯한 뿌연 세상이 연중무휴 관찰된다. 눈을 비벼도 맑아지지 않는 세상이 원망스럽다. 나야 맑은 하늘에 마스크 없는 세상을 살았다지만 커가는 딸에게는 미안했다. 나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만 외치면 되었는데, 딸은 감염병 환자 숫자와 먼지 농도까지 체크하며 행복순을 논해야 할 듯했으니까.
큰길로 들어서자 그간 아파트로 가려진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홍빛으로 옅게 물든 하늘이 흰색 도화지 같던 구름에 스미던 찰나였다. 바닐라에 체리향 시럽 넣고 휘저은 듯한 마블링이 하늘에 펼쳐졌다. 지평선 아래에 위치한 아스팔트에는 낮은 물 웅덩이가 하늘을 담아내고 있었다. 비냄새를 동반한 비린내와 습한 기운이 불어왔다. 그저 따스했다.
잠시 후 공원에 도착했다. 나지막한 언덕을 품고 있는 그곳에는 냇가를 따라 산책할 수 있는 둘레길이 있다.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만 해도 그 냇가에는 물이 야무지게 흘렀다. 수원지는 언덕 중턱 돌무더기 속. 그 안에서 물이 화수분처럼 솟았다. 내심 놀랐지만 무심한 척했다. 촌놈이 도심 속 빌딩 보고 놀라면 촌스럽듯 도시 놈 티 내지 않으려 애썼다. 여름에 발 담그고 놀 생각에 혼자 설렜다. 사실 그 냇가는 전기 펌프로 자연의 섭리를 역행하는 도시 놈 것이었다. 있던 물 퍼내 없던 물 주듯 줬다. 그걸 손뼉 치며 좋아하던 나는 금붕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입주철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냇가는 말랐다. 내가 좋아했던 공원 산책길은 물소리가 아닌 배고픈 고양이들의 호객행위로 얼룩진 서글픈 장소가 되어갔다.
산책로에 도착했다. 익숙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온다. 각각의 주체에 시선을 두지 않아도 한눈에 들어오는 장면. 초록색 녹음 사이로 사람으로 추정되는 옷의 색감이 콕콕 박혀있다. 이 시간 우리 동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경이다. 산책의 주체가 불분명한 견주와 강아지들, 손뼉 치며 걸으시는 아주머니, 허공에 혼잣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귀에 에어팟 꼽고 통화 중인 학생들, 작은 공터에는 대형버스 핸들처럼 생긴 큰 쇠구렁 돌리는 머리 희끗한 할머니까지. 서로의 욕망과 행동이 특이한 공원 구조를 따라 분산되어 움직였다.
난 이제 곧 이사를 가야 한다. 이사 날짜는 5월 중순. 한 달 남짓 남았다. 이사 갈 집 고르며 지금 살던 동네가 지긋지긋하다며 푸념했다. 그때는 정말로 이 동네가 물렸는데. 달력의 날짜가 지날수록 신경 쓰임으로 변해갔다. 평소 익숙하다 생각했던 동네 모습이 섬세하게 나를 현혹한다. 풀 한 포기 애틋했고 바람 한 점에 뒤돌아보곤 했다. 이사를 위한 염원이 이곳에 남을 추억으로 치환되는 감정을 매만졌다.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 '다시는'이라는 단어에서 숨이 탁 걸린다. 불쌍하고,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가엽다는 감정이 쏟아져 내렸다. 사람 살 부대끼는 곳에서 느끼는 감정을 동네에 느끼다니. 바위 속에 솟구치던 물처럼 이런 감정들이 촉발했다. 정말 이사 가는 게 좋아? 라며 나에게 묻는 듯했다.
서로 없는 살림 쪼개 가며 더 주고 싶어 안달 난 이웃이 있는가 하면, 억울한 일이 있을 때마다 불러내 등 두드려주던 공원도 있다. 결혼 후 좁아터진 원룸에서 곰팡이들과 죽네 사네 하며 살다가 이사 온 첫 아파트도 이곳이고, 우리 딸을 낳고 기른 곳도 이곳이었다. 도심 밖 변방보다는 시골의 중심지 같던 우리 동네가 나는 좋았다. 없는 것이 많았어도 있는 것 안에서 행복할 수 있었으니까. 생각해 보면 떠남과 새로움 사이에는 매번 이런 감정들이 있었지만 모르고 지나쳤던 것 같다. 새로움이란 틀에 나를 넣고 다시 녹아 굳어지기만을 기다렸을 뿐.
그런 우리 집과 동네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괜히 심술 났다. 한참 둘레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컴컴해진 공원을 본다. 어둠에 깃든 새로운 욕망들이 나를 흔들어 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