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써내려 온 글의 끝맺음이 또 말썽이다. 앞으로의 다짐을 써야 할지, 훈훈한 교훈으로 마무리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끝을 향해 돌다리를 놓아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째 더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은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첫 문장 쓸 때만 해도 집념과 열망은 대단했다. 써야 할 이야기가 많아 머릿속은 달아오른 압력밥솥처럼 추가 흔들리며 요란하게 김을 내뱉었다. 생각의 속도는 글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감각에 쫓기며 글로 달아나는 것도 잠시. 커서의 깜빡임만 멍하게 관전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개장한 해수욕장처럼 복닥복닥 하던 머릿속은 어느새 겨울 해변가처럼 하릴없는 파도만 오갔다. 펼쳐낸 글도 한 페이지 간당간당, 더 이상 쓸 이야기가 없었다. 이대로 끝내고 싶었다. 글보다 여백이 더 큰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시간과 잠에 쫓겨 무어라도 써야 한다는 의무만 차곡차곡 쌓여갔다. 장편 소설의 서문처럼 서사의 시작만 떠벌리던 내 글이 한심해 보였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작의 고통만큼 유에서 무로 나아가는 종결의 고통이 크다며 투덜댔다.
썼던 글 지우고 지운글 다시 살렸다. 조물주가 된 듯한 기분으로 단어를 바꾸고 문장도 바꿔 봤지만 같기는 매한가지. 붙이면 붙일수록 모양새는 빠져갔고, 바꾸면 바꿀수록 원점으로 돌아갔다. 글 쓰는 거 참 얄궂다며 한숨지었다. 주종을 바꿔가며 복스럽게 마시다 문득 마주한 상대가 변기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돌아온 현실 감각만큼이나 숙취로 절여진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뭐든 과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글에다 후회할 짓만 반복하고 있었다.
문득 인상파 화가의 그림이 떠올랐다. 화가의 순간적인 시선으로 포착한 바를 강렬하면서도 뭉툭한 붓놀림으로 그려낸 그림. 그 그림은 정물화보다는 배경이 흐렸고, 추상화보다는 초점이 강했다. 갑자기 이런 그림이 왜 생각나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짧고 굵은 글을 쓰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기승전결 날렵한 논리로 무장한 글. 부사 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허락지 않는 AI 같은 글보다, 순간의 감정에 전염된 한 인간의 어리석음도 글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싶었다. 어설프고 어눌한 듯하지만 읽고 나면 독자의 머릿속에 스스로 증식하는 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심정으로 결말에 치닫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글은 독학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괜찮다는 위로가 이제는 식상하다. 생각의 변화가 필요할 뿐. 작은 실수 한번 했다고 삶이 끝난다거나 다시 시작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끝나지 않는 글이 나에게는 그저 귀여울 따름이다. 그냥 쓸 수 있는 만큼 쓰고 열어두자. 탁 트인 결말은 다음에 있을 글을 시사하기도 하지만 다음에 없을 결말도 생각하게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