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쉽지 않다.
세상은 나의 모든 욕구에다 악플을 달며 냉소하는 듯했다. 나는 하나만 잘하면 되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라도 못하면 안 되는 세상에 사니까 그런 거라고 혼자 다독이곤 했다. 요즘 들어 숨 막힌다는 말을 자주 한다. 나를 감싸는 공기가 부족하다거나 폐의 흡기와 호기가 불편해서 나온 말은 아닐 터.
나는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내가 뒤척이며 살아가는 현실의 보폭을 좁히려 노력했다. 남들보다 적게 자고 적게 놀며, 노력이라는 연료만 충분하다면 성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 멸치 만한 몸에서 고래 같은 꿈을 품고 어른이 되기만을 숨죽여 기다렸다. 어른이 되어도 현실은 초라함 그 자체. 진창 같은 땅에서 희망 꽃이 피어나길 염원했다. 아직은 해볼 만하다며 절망에 젊음을 갈아 넣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절정에 있을 복수를 위해 세상이란 악역에 납작 엎드렸다. 참고 또 참았다. 언제라도 용수철처럼 튀어나갈 그날만 기다렸다.
처음 직업을 가졌던 때를 기억한다. 중소기업 신입으로 들어가며 다짐했다. 여기를 시작으로 내 꿈에 가닿을 수 있을 거라며 발걸음에 힘을 실었다. 그런 희망도 잠시. 내가 입사하자마자 납품하던 물건에 문제가 생겼다며 모든 휴일과 주말을 수확해 갔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2교대를 돌았다. 밤과 낮이 바뀌며 세상을 감각하는데 문제가 생긴 듯했다. 밤에는 원래 피곤했고 낮이 되면 그냥 피곤했다. 대학 새내기시절 매번 갱신되던 술병의 최대치를 축하하며 받아내던 새벽과는 달랐다. 24시간 돌아가는 콩나물 국밥집처럼 긴장은 꺼지지 않았고 불면증만 찾아왔다. 아무리 꿈을 품어봐도 역부족. 쪽잠으로 부족한 잠을 채워가며 삶을 연명해 갔다. 그때는 현실이 꿈이고 꿈이 현실인지 전혀 분간하지 못했다.
그렇게 허덕이기를 몇 년. 불량으로 살얼음판이던 회사에도 봄이 찾아왔다. 불량은 잦아들고 물량은 되려 늘어났다. 전 직원이 백방으로 노력한 탓에 이렇게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며 울먹이던 사장님의 말에 나 또한 눈물이 났다. 내 젊음과 맞바꾸었던 회사가 기특했다. 그간 후원했던 소년소녀 가장이 금의환향이라도 한 듯 나도 기뻤다. 겨우 찾아낸 안정에 숨을 고르던 찰나. 또 한 번 사달이 났다. 그간 납품처 한 곳만 바라보며 달려온 회사였는데, 경쟁사에 빼앗겼다는 소문이 돌았다. 매출 천억을 그냥 넘기던 회사라 별일 있겠거니 하며 가볍게 넘겼는데, 소문이 현실이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과 몇 주만에 연구소를 정리해야 한다는 말을 팀장 입으로 들었다. 앞은 캄캄했고 오장육부는 뒤틀렸다. 어떻게 얻은 직장인데 하며 혼자 주저앉아 번뇌했다. 그날 나는 삐뚤어지겠다며 다짐했다.
매번 춥고 더워서 죽을 것만 같던 계절도 어느새 열 바퀴를 돌았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된 직장과 생활 속에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본다. 그때를 복기하며 손에 잡힐 듯 달아나던 감각의 저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뭣도 모르고 가서 버텨냈던 군대처럼 다시 하라면 못할 짓 같아 보였다. 세렝게티에 혼자 남겨진 톰슨가젤 생존기 같던 과거의 처절함에 입에 단내가 나는 듯했다. 그때 단련해 두었던 삶의 근육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하며 소름 돋았다.
세월이 흐를수록 삶에 안주하는 나를 본다. 한때는 했던 일 계속할 수 없다며 눈물짓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했던 일 계속해야 한다며 한탄하는 내 모습이 그저 철부지 아이 같다. 세상 씹어먹겠다며 마음에 굳은살 두르고 근육을 늘려가던 그때가 그리웠다. 이제는 어디 가서 이런 말 꺼내지도 못한다. 했다간 아재니 꼰대니 하며 비아냥대는 모습을 봐야 할 테니까. 그저 혼자만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을 뿐이다.
한 살이라도 더 젊었을 때 바디 프로필 찍지 못한 게 한(恨)으로 남는다. 그간 찢기고 아물며 다져진 마음 근육의 흔적이라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 쓰고 지우다 보면 번민하고 고뇌하는 형벌이야 받겠지만 그 마음 그대로를 본떠 조각한다는 심정으로 이 악물면 되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이 내 마음 프로필 찍기에 딱 좋은 시기가 아닐까 싶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