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 증상이 있지만 심하지는 않네요"
얼마 전 허리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X-Ray를 찍고 초조하게 기다린 지 몇 분. 간호사가 들어오라 해서 들어갔더니 앉기도 전에 의사가 건넨 말이다. 허리 디스크 초기란다. 정도가 심하지 않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함께 덧붙였다. 아프지 않을 거란 확신을 가지고 묻는 질문에 반사적으로 아프지 않다고 대답했다. 허리와 엉덩이 종아리를 따라 이어지는 신경의 뒤틀림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나는 얼른 허벅지에다 손을 가져가 통점에 재갈을 물린 채 무표정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지금도 나를 삼킬 듯 달라드는 고통의 절규가 다 엄살이란 말인가? 남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증상이라는데 죽겠다며 앓고 다녔다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끄러움이 왕창 주입되고 나서야 약발이란 게 먹히는 듯했다. 끊어질 듯 아팠던 통증도 기세가 한풀 꺾이는 모양새다. 게임에 레벨이 올라가듯 통점의 한계치가 올라가는 숫자가 머리 위에 떠있을 듯했다. '이 정도면 참을 만한 거였네' 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동안 내가 고통이라 할 만한 시련을 받지 않은 듯했다. 참을만하고 반복적인 하루만 풀어내다 보니 사소한 아픔에도 과민반응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허리가 아파 갔던 병원에서 디스크라는 병명보다 터져버린 걱정의 물꼬가 더 신경 쓰였다. 살을 빼야 한다, 운동을 해야 한다, 바른 자세로 앉아야 한다와 같은 응당 의사라면 하는 말들만 귀와 귀 사이를 오갔다.
사실 며칠 전부터 허리가 아프다며 '으~, 아~'란 시름을 달고 살았다. 와이프가 싸준 쌈이 입에 들어오기도 전에 감탄사가 나와야 하듯 관절의 꺾임에 아플 새도 없이 추임새가 먼저 튀어나왔다. 왠지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앓으면서도 본분을 다 해야 하는 모습이 남편으로써 아빠로서의 구실에 충실하다는 방증이기도 했으니까. 한 가정의 현장 속에 본업으로 다쳤으니 사랑으로 보답받겠다며 산재라도 청구할 기세다. 예전에는 몸이 아프면 누군가에게 걱정을 끼칠까 싶어 숨기기 바빴는데, 이제는 몸이 아프니 무어라도 받아야겠다며 본능적으로 입을 벌리게 되는 것 같다.
얼마 전 딸아이가 개미 다리에 긁혔을 법한 상처를 보여주며 울먹이는 모습을 봤다. 아무리 봐도 아파 보이지 않길래 무미한 표정으로 건조하게 대답해 줬다. 딸아이는 그런 반응을 예상 못했던지 입이 한 뼘쯤 튀어나와서는 반대쪽으로 돌아 앉았다. 누가 봐도 삐진 사람 같았다. 순간 내가 아이의 동심을 짓밟았나 싶어 상처가 얼마나 아프냐며 큰소리로 되물었다. 말 끝나기가 무섭게 상처 주위를 손으로 감싸며 보여주었다. 좀 전까지 묵언하며 삐졌던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침묵을 깨는 호들갑이 이어졌다. "많이 아팠겠다." 라며 다독여 줬다. 나는 센 척이라도 하고 싶었던지 말을 이어갔다. 아빠는 이런 거 10개 있어도 아프지 않다며 예전 수술자국을 보여줬다. 딸아이는 한참을 요리조리 관찰하더니 강아지 같은 눈빛으로 되물었다. “아빠는 아프면서 왜 말 안 하는 거야?”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어른이 되면 다 참는 거야 라는 말이 턱밑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아직 허세와 진심을 분별하기 어려워하는 딸아이. 산타클로스가 집으로 들어올 곳이 없다며 울상 짓는 아이에게 진심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진심이 아니었기에 말할 수 없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는 게 정상. 청춘은 아프다거나,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이 이제는 오래된 백반집 벽에 붙어 있는 빛바랜 소주 광고처럼 느껴졌다. 그냥 말하라고 했다. 받은 감정이 있으면 어떤 감정인지 매만져보고, 다친 감정이 있으면 어디가 어떻게 다쳤고 왜 다 쳤는지 말하라고 했다. 가감 없이 말해 눈치 없다는 말을 듣더라도 자기 할 말 다하고 당당하게 사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나도 이제는 엄살 좀 부려도 되지 않을까? 이 나이에 아프면 이미 늦다는 생각이 기정사실로 되어간다. 잦아지는 고통에 비해 회복 주기가 눈에 띄게 더딘 지금, 다시 있을 상처에 대한 두려움만 나날이 늘어 갔다. 아프다고 엄살 좀 피면 어떠랴. 그간 장남이고, 맏사위면서 가장으로 살아왔던 나. 아파도 나만 아프면 되고, 힘들어도 나만 힘들면 된다던 생각으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살아왔다.
큰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는 산들바람에도 나부끼는 갈대를 보며 가소로운 듯 말했다. "너는 귓가를 간지럽히는 바람에도 흔들리면 나중에 어쩌려고 그러니?" 그러던 어느 날 태풍이 불어닥쳤고 며칠 뒤 바람은 다시 잦아들었다. 갈대는 예전 그 모습 그대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지만 나무는 부러진 채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얼마 전 딸아이에게 읽어준 동화책 이야기가 복선처럼 나를 스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