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 이곳저곳에 변화가 생기는 중이다.
수십 수백 개로 쪼개져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던 생각의 덩어리가 서로 합의라도 본 것인지 비슷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외부의 변화에도 즉각 반응하지 않는 내 심정의 평온함이 크다면 가장 큰 변화. 하릴없이 나이만 먹다 보니 내면에도 속세의 찌든 때가 눌어붙어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글 쓰고 지우며 희열과 좌절을 교대로 접종하다 보니 이런 궁상에도 면역력이 생긴듯하다. 뭐가 됐든 중요하지 않다. 지금도 이렇게 쓸 수 있고 변화하는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예전 나는 관계 속에 있으면서 고립의 두려움을 걱정하곤 했다. 몇몇이 모여 대화를 하고 있으면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고, 스마트폰 진동이 동시에 울리기라도 하면 내가 없는 단톡방이 있는 것은 아닌지 촉을 세우고 경계를 해댔다. 미어캣처럼 서서 누군가를 흘기며 일하는 맛이란. 그냥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머리에 김이 오르고 척추와 경추에 변형이 생기는 듯 뒤틀렸다. 이런 걱정은 근심을 낳고 확신으로 변질되어 나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나는 관계에 밀려다니며 소속감을 갈망하는 좀비 같은 존재가 되어갔다. 남들과 발맞춰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밤낮없이 들려왔다. 그 누군가의 사이에 뛰어들어 눈치 볼 때 그 기분, 이런 나를 냉소 섞인 눈빛으로 보는 듯한 시선 하나하나가 되살아나 나를 스쳐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궁금했다. 인생에도 Save, Load 기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혼자 주저앉아 번뇌하곤 했다.
지금 나는 참 많이도 변했다. 과거에 발 동동 구르고, 펄쩍 뛰었을 법한 일도 이제는 자장가로 들려올 지경. 무엇보다 글 쓰며 나와 발맞춰 걷는 일이 익숙해지자 혼잣말을 자주 했다. '그럴 수도 있지, 사정이 있었겠지, 필요하면 부르겠지, 내가 알아서 뭐 하겠어' 같은 수도승이 할 법한 말을 되뇌기 시작했다는 것. 어차피 집에 가 글 쓰다 보면 내가 경솔했을 것이고 오해했다는 생각에 후회만 늘여놓을 거니까. 또 나만 힘들겠지. 이런 자숙과 깨달음이 반복되다 보니 내 귀와 눈에는 두터운 강철 필터가 끼워졌다. 넘실대던 파도와도 같았던 마음의 요동은 점점 잦아들어 갔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자 내 안에 해라도 떠오른 것인지, 그간 새벽녘 내려앉은 안개 같았던 번민과 근심이 점점 걷히기 시작했다. 수평선인지 지평선인지 모를 경계점에 떠오른 해에 놀라 꽁무니 빠지게 도망가는 꼴이라니.
나 이대로 가도 괜찮은 것일까? 이제는 과거의 나보다 미래의 내가 더 걱정이다. 계속 이런 수도승 같은 말만 던지다 보면, 언젠가는 모든 것이 부질없이 느껴지는 그런 날이 올 것만 같았다. 분명 나는 있지만 내가 소멸될 것 같은 열반의 단계 말이다. 아니면 내가 지금껏 너무 섬세했다거나 과민하게 살아왔다는 사실의 방증일지도. 어둠이 와야 초인적인 촉감이 그 빛을 발하 듯. 반대로 주변이 밝아지면 예민하던 촉감도 무뎌지지 않을까? 글 쓰며 유독 힘든 것만 감각하고 짜증 내곤 했었는데, 오히려 감각의 균형 잡기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푹푹 찌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자 몸만 축나던 찰나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근심이 되려 반가운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