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더위가 35도를 웃도는 요즘이다.
더군다나 여기는 바나나도 자란다는 그곳 대프리카. 땡볕에 잠시라도 차를 두고 올 때면 핸들 커버는 열기에 녹아 흐물거렸고, 블랙박스는 제철인 양 잘 익어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지난 주말 더위에 지친 우리는 자그마한 야외 수영장 딸린 피크닉장을 다녀왔다. 이렇게 더운 날 땡볕에 어떻게 있냐며 몸서리치면서도 몸은 내심 나가길 원했다. 한동안 집에만 있었더니 좀이 쑤시고 머리는 멍했으니까. 이대로 조금만 더 머물면 관절과 뇌세포에 퇴화가 올 것만 같았다. 이왕 이래 된 거 나가서 놀다 쪄 죽는 게 낫겠다며 가까운 근교로 나들이를 나갔다. 짐을 싸면서도 적국에 가는 장수처럼 각오가 남달랐다.
장소는 영천에 있는 어느 피크닉장. 교실이 4개뿐인 1층짜리 건물에 앙증맞은 운동장이 딸려 있었다. 사장님은 여기 폐교를 싼값에 매입해 피크닉장으로 개조한 뒤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운동장 테두리에 위치한 데크는 한산했다. 사람이 있는 데크가 반에 반도 되지 않았다. 그래 이런 날 야외로 놀러 나온 사람들은 나 같은 생각으로 이 악물고 왔겠거니 했다. 왠지 모를 동정심에 마음이 느슨해졌다. 잠시 흐리던 하늘의 구름이 걷히자 모든 사물의 윤곽이 쨍하게 선을 그었다. 눈은 따가웠고, 사지가 접히는 곳에는 육수가 흘러내렸다. 어제 온종일 푸념하고 오늘 하루를 더 버티지 못한 나의 경솔함에 후회했다.
나는 한숨지으며 우리가 머물 곳에 짐을 풀었다. 데크에는 테이블 하나 의자 여섯 개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구석에는 냉장고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타프와 모기장이 쳐져있기는 했지만 쏟아지는 햇볕과 오색빛깔 벌레들을 차단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짐을 정리하던 중 딸아이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는 더운 건 모르겠고 오로지 운동장 한가운데 위치한 풀장에서 물놀이할 생각뿐인 듯했다. 그래 너라도 좋으면 됐다며 더위의 만행을 극복할 여분의 인내심을 챙겼다.
딸아이는 무엇이 그렇게 행복한 것인지 말대신 천진난만한 웃음소리만 냈다. 그 웃음소리에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났다. 땀이 주는 찝찝함을 감각할 새도 없이 우리는 서로 한참을 웃었다. 얼마 후 아이는 엄마 아빠의 생사도 잊은채 물에 몸을 맡겨 신나게 놀고 있었다. 코를 오른손 검지와 엄지로 집게처럼 잡고 잠수를 하기도 하고, 튜브 구멍에 엉덩이를 넣고 물방개처럼 떠다니기도 했다. 물이 깊지 않아 그런지 잘 놀았다. 그간 물에 대한 공포증으로 비명만 질러댔던 과거가 무색한 듯 보였다. 보고 있자니 마냥 좋았다. 불멍이나 물멍처럼 딸멍을 하며 그 모습을 두 눈 가득 담았다.
딸아이는 잘 놀다 말고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형제끼리 장난치고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며 생각에 잠겨있는 듯 보였다. 입을 삐죽거리는 모습에서 복잡한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혼자 놀기 심심했던지 서로 같이 노는 무리들이 부러운 모양새다. 혼자가 아닌 아이들은 딸아이의 질투 섞인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물 뿌리며 잡기 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처음 여기 왔을 때도 딸아이만 혼자였기에 내심 신경 쓰이긴 했었는데, 걱정이 현실이 되는 듯했다. 터울이 비슷한 남자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같이 노는 것 같다가도 므스마들의 과격함에 놀라 도망가기 바빴다. 다들 쌍쌍이 모여 노는데 우리 딸아이만 왜 혼자일까 라는 걱정이 씨가 된 게 아닐까 싶었다. 얼른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사실 딸아이는 이름도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이모가 많다. 생일이나 명절이 되면 한자리에 모여 상황극 놀이를 한다. 아이는 모두를 호령하는 격식 있는 왕족 중에 왕족. 그때마다 기쁨에 겨운 비명을 지르며 분주하게 놀았는데, 이렇게 가족끼리 다닐 때면 너무 쓸쓸한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하나를 더 나아야지 하면서도 쉽지 않았다. 하늘에 이치에만 맡겨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하나도 족하다며 안도가 하늘에 닿은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며 아이에게 혼자 노는 법도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인간이야 사회적인 동물이고 혼자서 살 수 없다고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는 혼자가 더 할 수 있는 게 많은 세상 아닌가. 나도 비록 남동생이 있기는 했지만 5살이라는 나이차는 극복하기 어려웠다.
아이도 나처럼 글 읽고 쓰면 좋겠다 싶었다. 아직은 유치원생이다 보니 이제 겨우 글 익히며 더듬더듬 책 소리 내어 읽는 수준. 아직은 글보다 그림이 더 많은 책을 좋아 하지만 글과 조금씩 친해지길 바랐다. 나처럼 내외가 심하다 뒤늦게 치유를 위한 글쓰기를 하겠다며 푸닥거리는 것 보다, 어렸을 때부터 쓰기에 익숙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사춘기나 학업의 무게에 눌리더라도 혼자 속닥속닥 써가며 마음에 담금질을 하기도 쉬울 터. 언어영역의 점수가 올라가는 건 덤이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어떻게 글을 가르치면 좋을지 고민했다.
딸아이는 이런 나의 계획도 모른 채 다시 물에 코를 박고는 잠수가 한창이다. 한 마리 벌이 날아와 데크옆 틈서리에 핀 노란 꽃 위에 앉았다. 꽃이 흔들리자 딸아이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일어나야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