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만하면 된 거 아닌가?'
쓰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참 많이도 떠들었다. 글 좀 쓰겠다며 방문 걸어 잠그고 시작한 고행 길. 혼자 쓰고 지우며 창작의 불꽃을 피운 지도 벌써 2년이 넘어간다. 안 쓰던 날에는 가슴에 쌓인 먹먹함에 울분이 흘러넘쳤고, 쓰는 날에는 넘치는 생각에 비해 초라한 문자의 끄적임이 그저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한바탕 쓰고 나면 몇 일간은 숨 쉴 수 있었다. 한숨이 날숨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호흡이 통과해야만 만들어지는 문장. 남들 보기에 하찮은 끄적임 같아 보여도 나의 감정이 몰입된 자아, 즉 나라는 존재 그 자체였다. 문장 끝에 찍히는 마침표는 주어 서술어 목적어의 역할 종료가 아니라, 고통을 물고 뜯고 삭힌 뒤 느낄 수 있는 오감의 소용돌이를 만끽할 여정이 되었으면 했다. 지나온 과거를 통째로 삼켜버릴 만큼의 허무한 감정을 단 몇 글자에 녹여내고 싶었고, 앞으로 촉발할 감동의 크기를 가늠하고 싶었다.
그간 겪어온 삶의 기복은 항상 비슷한 방법과 주기로 반복되었다. 단순함에 지친 것인지 굳은살 때문인지 모를 맷집이 나에게도 생겨버린 것일까? 좋은 일이 있어도 좋아할 줄 몰랐고, 슬픈 일이 있어도 시간의 치유력에 기대 덤덤해질 그날만 기다렸다. 삶은 나이와 세월의 야속함에 깎여 점점 야위어 갔다. 존재 자체만 앙상히 남아 그저 거친 숨만 내쉴 뿐.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인생에 낙이 없다.'는 말이 현실이 될까 두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글쓰기가 찾아왔다. 글쓰기는 나에게 고통받는 법을 알려 주었고 그 아픔뒤에 누려야 할 보람, 만족, 뿌듯함과 같은 말들을 손에 쥐어주었다. 그동안 밀렸던 월급에 성과급까지 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래도 되나 싶다가도 그간 고통에 잠겨 익사할 듯 지나온 날들이 뇌리를 스쳤다. 그래 이제는 보상받을 때도 되었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글 쓰는 순간의 까칠함은 무뎌지고 식상해진 내 삶을 꼬집어 댔다. 꼬집을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구치듯 아팠지만 계속 이렇게 바닥만 뒤적이며 살 수도 없음을 알려주고 싶은 눈치였다. 선생님도 학생도 없는 이곳 글쓰기 세상에는 고통과 깨우침만 존재했다.
누가 내 글 보고 이런 말 한 적 있다. 쓰기에 진심인 작가님이라고. 나는 무슨 훈장 받은 사람처럼 좋아했다. 한참 동안 그 말을 매만지며 읽고 또 읽었다. 진심이란 단어에서 내가 처음 글 쓰던 때의 아픔이 떠올랐다. 별생각 없이 농담처럼 시작한 글쓰기가 나에게 던진 냉소와 조소는 진심이었으니까. 그때는 쥐구멍이 아니라 개미굴이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기에 돌아온 비웃음이라기보다 진심이 아니면 시작도 할 수 없는 게 글이 아니었나 싶다.
쓰기가 이제는 너무 깊숙이 내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다시 뺄 수도 더 넣을 수도 없는 상황. 그저 웃음만 나온다. 어차피 써도 아프고 안 써도 아프다면 한 글자라도 더 쓰고 뒤척이며 삶을 만끽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혼자 중얼였다. 한참 글 쓰다 말고 후드득 빗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봤다. 반쯤 열린 창문 뒤, 어두컴컴한 어둠 사이로 내리는 빗소리 때문인지 장마가 주는 꿉꿉함 때문인지 모를 무언가에 의해 눈가가 메어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