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내 글이 좋았는데. 오늘 읽으니 단어 선택부터 전개 방법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글이 맞나 싶을 정도. 상황이 이쯤 되니 글쓰기 방법이 잘 못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완치된 줄 알았던 '왜 내 글만 못났지' 병이 다시 도지기라도 한 것인가.
나는 글쓰기에 있어서 만큼은 진심이다. 밥을 굶더라도 글을 택하는 편. 그렇다고 해서 매일 원고지 몇 장의 분량을 규칙적으로 쓰는 타입은 아니었다. 글과 연애하는 사람처럼 밀당이라도 하는 듯했다. 쓰지 않으면 쓰고 싶었고 쓰겠다 하면 힘들다며 툴툴댔다. 10년째 연애 중인 애증의 커플 같다랄까. 무엇보다 일정하게 쓰기가 힘든 이유는 평일에는 일이 바빴고 퇴근이 늦었다. 그렇다고 쉴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잠깐씩 비는 시간을 글로 채운다 생각하니 그저 아까웠다. 직장인의 굴레에 달궈진 머리 식히기도 모자랐으니까.
그래도 글감은 꾸준히 모았다. 작정하고 써보겠다며 멍석이라도 깔면 글감은 저 멀리 도망갔다. 그 주제에 대해 쓰면 안 되는 이유만 따박따박 토해냈다. 반면 집중해서 일하고 있으면 참신한 생각이 눈앞에 누워 이죽거렸다. 미칠 듯 얄미웠다. 이 녀석을 잡아 따라가기라도 한다면 일이 중간에 끊겨 다시 처음부터 해야 될 것 같았고, 그렇다고 무시하자니 너무 아까웠다. 명령만 떨어지면 둘 중하나는 바로 할 수 있는 상황. 고민하던 찰나 어디선가 선택장애가 나타나 자기 지분 내어 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다. 사사로운 생각과 고민의 갈래에서 번뇌했다. 코가 간지러웠다.
결국 나는 딴청 피우며 생각을 낚았다. 스마트폰 메모장을 꺼냈다. 글쓰기 회로를 돌리면 의식이 멍석이라도 까는 줄 알고 생색낼 것 같았다. 반사적으로 느낌만 따라내 적었다. 그 생각 모두를 가지려 한다면 욕심이겠지. 그 흔적만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다음에 보더라도 비슷한 감정을 유추할 수 있어야 했으니까. 일 하면서 달아나는 감정의 꼬리를 밟으며 찰나의 심정을 단어로 꿰었다. 나는 그렇게 머릿속 단어를 뽑아내 메모장에 적었다.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 앞에 카메라를 꺼낸다면 나는 이런 묘한 감정 앞에 반사적으로 메모장을 꺼내 끄적였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체력은 완전 방전 된다. 숨 쉴 힘조차 없다는 느낌이 이런 느낌 이겠거니 했다. 매일 반복되는 챗바퀴에 종이작처럼 납작해진 마음 달랠 길 없었다. 어떻게든 쉬어야 했다. 예전 같으면 소파에 누워 아무 생각 없이 TV 채널만 오가는 게 나름의 휴식이었다면 지금은 메모장을 꺼내 낄낄댄다.
의지가 관여하지 않은 메모장 속에 누워 있는 글들은 난센스 그 자체였다. 여기저기 흩어진 단어를 모아 의미로 만들어 가는 재미는 의외로 쏠쏠했다. 비싼 호텔방 들어가 냉장고 열어보는 마음 같다 랄까. 단어를 책갈피 삼아 메모하던 순간의 생각과 감정을 떠올렸다. 그림 퍼즐 맞추는 기분으로 큰 틀을 만들고 그 안에다 말이 되게 글을 채웠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곱씹다 보면 사건 너머로 새로운 차원이 생겨나는 듯했다. 당연했던 결과에 물음이 생겼고, 이해가 되지 않던 상황도 '아~' 한마디와 함께 납득이 되었다. 신기했다. 그간 생각을 누르고 있던 몸에 힘이 빠져 그런 것일까? 개업집 앞에 공기의 흐름대로 춤추는 인형처럼 의식의 펄럭임은 자유로웠고 영험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하며 스스로를 뿌듯해했다.
생각은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한다. 논리로 무장해야 감각할 수 있는 세상이 있고, 육체의 지배를 벗어난 정신이 감각할 수 있는 세상이 있다. 같은 사람, 다른 생각의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머리는 상황에 맞게 적응한다. 여러 처지에 많이 놓이는 사람일수록, 생각의 깊이가 수시로 바뀌는 사람일수록 서로의 접점도 많다. 그러고 보니 알짜베기 생각은 한곳에 집중하고 있을 때 보다 이곳저곳을 넘나들며 서로의 경계가 무너지고 섞이는 지점 어딘가에서 촉발했던 것 같다.
뉴튼은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아르키메데스는 욕조의 물이 넘치는 걸 보고 유레카를 외쳤다. 글쓰기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매일 평온하다 못해 따분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이 격동적이고 희망적인 글을 쓸 수 없는 것처럼. 쓰고자 하는 글을 위해서라도 삶의 방향을 시시각각 틀어야 했다. 순간 머리가 환해졌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써야 할지 답을 아는 눈치다. 지금 내가 위치한 곳과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선으로 긋고 연장선을 그어 그 어딘가를 목표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 연장선 너머의 세상은 엉뚱한 곳일 수도 있고 막다른 곳일 수도 있다. 그 여정 또한 쉽지 않겠지. 그래도 목표가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달라서 별로였던 내 글을 봤다. 지금 보니 또 나름 괜찮은 글 같았다. 속으로 피식 웃으며 미소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