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뒤끝 있는 사람이다.
뒤끝의 사전적인 의미는 좋지 않은 감정에 대해 얼마나 품고 표현하는 것에 대한 척도를 나타내는 단어. 요즘은 작렬이라는 동사와 어울려 다니며 속 좁은 사람을 더 작게 만드는 주범이 되는 거 같다.
자신은 뒤끝 없다는 말 하는 사람을 종종 가끔 본다. 그때마다 나는 그 말을 하는 의중이 궁금했다. 뒤끝이 없으니 오해와 나쁜 감정을 투척하더라도 없었던 일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일까? 아니면 자신은 그러하니 너도 나쁜 감정은 잊어라 강요하는 것일까? 무엇이 되었든 거짓말처럼 들린다. 나쁜 감정을 남김없이 따라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좋은 감정보다 나쁜 감정은 몇 배에서 수십 배에 달할 정도로 유통기한이 길다. 심지어 반영구적으로 보존되어 트라우마로 남는 경우도 있다. 뒤끝 없다며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은 나쁜 감정을 잘 잊고 싶어 입 밖으로 희망사항을 내뱉는 거겠지 했다.
나는 대놓고 뒤끝 있는 사람이다. 나쁜 감정은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남아 나를 괴롭혔다. 그때 그 사람의 말투와 표정이 내 감정과 포개져 심장을 마구 깨물어 댔다. 가슴은 동상 걸린 사람처럼 덜덜 떨렸고 수백 명 대중 앞에 혼자 서있는 사람처럼 쿵쾅거렸다. 눈 뜨거나 감으면 어김없이 그 음산한 기운이 온몸을 덮쳤다. 보통의 생각과는 차원이 달랐다. 촉각, 시각, 청각, 후각, 미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월적인 감정이랄까? 오만가지 나쁜 기억이 몰려와 나를 괴롭혔다. 일이 바쁘거나 책을 읽으면 그나마 살만했다. 그때만큼은 머리도 집중한 탓인지 뒤끝 작렬하기 위한 곳으로 에너지가 가지 않는 듯했다. 당시에는 쉬는 게 두려웠고, 자는 게 힘들었다. 계속 일만 하다가 쓰러져 자고 싶다는 생각뿐.
어떻게든 뒤끝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쿨하다는 말이 듣기에도 좋고 보기에도 좋아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시도는 나를 위한 행동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큰일인데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게 싫었다. 일그러지는 표정을 펴기 위해 불수의근을 수의근으로 바꿔야 하는 기적을 만들어야 했다. 기분 나쁜 사람은 난데 상대방 눈치를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은 더 엉망이 된다. 당장 싫으면 싫다고 표현할 수 있고, 내일도 모레도 싫다면 티를 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나의 행동을 가지고 뒤끝이 있다느니 속이 좁다느니 운운하는 사람은 그래도 된다. 자신은 넓고 포용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남에게 피해 주고도 남 탓만 하는 사람의 방증일 뿐이니까.
글 쓰다 보니 뒤끝 있는 사람이 오히려 글쓰기에는 유리한 것 같다. 당시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가져와 박제할 수도 있고, 감정 끝에 맴도는 쓴맛을 맛깔나게 표현하기도 수월했으니까. 무엇보다 혼자 복닥거리며 쓰다 보면 악감정의 복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감수분열이 일어났다. 어차피 다시금 생각나 나를 괴롭힐 작정이라면 뿌리까지 끄집어내 글로 쓰고자 했다. 큰 감정 사이로 사사로운 감정들의 잔가지가 고해상도 사진처럼 뻗쳐 있었다. 쓰면서 분노와 희열을 번갈아 느꼈다. 머리는 뜨거웠고 손은 떨렸다. 희비를 교차하며 한참 동안 번뇌했다. 그렇게 쓰다 보면 어느새 떨림도 열도 누그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뒤끝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억지로 노력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뒤끝이라는 것은 남들이 일방적으로 내리는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니까. 화가 나면 내면 되고 그 사람이 떠나가면 보내주면 되는 거다. 어차피 관계라는 게 뒤끝의 유무로 유지되는 게 아닐 테니까. 그래도 계속해서 쓰다 보니 감정의 꼬리가 길어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글 쓰기에도 좋고 감정을 모았다가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머리가 오히려 맑아지기도 하니까.
태풍이 그간 꿉꿉했던 더위를 모두 쓸어가 버린 듯한 눈치다. 살랑살랑 불어노는 바람에서 가을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