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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집어보기'의 또 다른 생각

by 눈 비 그리고 바람

'이제 이만하면 된 거 아닌가?'

쓰기 가지고 참 많이도 떠들어댔다. 글 좀 쓰겠다며 방문 걸어 잠그고 시작한 고행길. 혼자 쓰고 지우며 창작의 불꽃을 피운 지도 어느덧 2년이 넘어간다. 안 쓰던 날에는 가슴에 맺힌 답답함 삭이지 못해 어쩔 줄 몰라했고, 쓰는 날에는 넘치는 생각을 제대로 담지 못해 버려지는 감정을 아쉬워했다. 그때는 뭘 해도 힘들었다. 잘 쓰기라도 하면 힘들게 쓰더라도 관망하는 재미라도 있으련만. 내 마음에 켜켜이 쌓인 작은 응어리조차 털어내지 못하는 필력이 그저 원망스럽다.


쓰는 동안 셀 수 없이 몰아쉰 한숨과 날숨들. 고통에 데워진 그 공기를 얼마나 뿜었을까? 내 마음 바닥에 그간 말 못 한 말들이 서서히 고이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속좁아 보인다거나 너무 이기적이거나 과민반응 아니냐는 식의 말들이 대부분. 누구에게나 지극히 사적이고 사사로운 이야기란 게 존재한다. 남들에게 그냥 보여 줄 수 없는 생각을 품기만 했지 말할 줄 몰랐다. 어떻게 쓰면 이런 사적인 이야기에 공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일까? 매번 쓰며 생각했다. 약은 기교로 보편타당한 말만 하는 글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말하면서도 각자 자신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을 촉발할 수 있는 깊은 쓰기를 원했던 거 같다.


기술적인 내용만 담겠다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너무 날것의 생각만 쓰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단지 마음 가는 대로 쓰더라도 뻔한 글이 되지 않았으면 했고, 오색찬란한 미사여구를 남발하지 않아도 이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얼마든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싱거울 정도로 담백한 단어와 휑할 정도의 여백만으로도 충분히 기름진 글을 쓸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도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모른다. 다른 누군가의 글이나 책에서만 봤을 뿐.


나는 그런 글 쓰기 위한 레시피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내 머릿속에 은혜로운 글을 만드는 방법으로 가득 차있을 그때의 기분을 상상해 봤다. 하루의 연결이 매끄럽고 지난 세월의 흔적마저도 아름다워지겠지. 생각만으로도 흡족했다. 쓰겠다는 욕구가 모든 욕구를 압도했다. 조금이라도 쓰다 나아진다 싶으면 그 순간을 끄적였다. 당시의 마음가짐과 의지를 기억하며 글로 글을 남겼다. 분석도 해보고 따져도 봤지만 인과가 전혀 맞지 않았다. 글이라는 건 그냥 기분과 운에 따라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는 황당한 결론에 이를 때쯤 작가에 대한 경외심만 쌓여갔다. 펜을 꺾고 싶었다. 글도 '재능 빨'이라며 무심한 하늘을 탓했다.


그때 남긴 글을 읽고 또 읽었다. 답은 처음부터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속는 셈 치고 라는 말만 되뇌며 쓰기를 계속했다. 자연스러울 때까지 지웠고, 말이 될 때까지 쓰고를 반복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감정이 조금씩 말이 되기 시작했다. 나만의 언어가 나다운 언어로 변모했다. 어떤 날은 쓰다 말고 이유 없이 웃기만 했다. 쓰는 게 쉽다거나 내 글이 세련되서가 아니었다. 단지 내 생각이 엇비슷하게나마 글이 되어 누워 있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으니까.


고슴도치는 제 새끼도 함함하다 했던가. 아직 누군가에게 내 글은 가시 돋친 투박한 모습일 수도 있지만 난 전혀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읽고 싶은 글만 읽어도 죽을 때까지 다 읽을 수 없는 감옥에 갇혀 사니까. 내 삐쭉빼쭉한 글이 누군가에게는 솜사탕처럼 함함한 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단 한 명의 독자라도 만족하면 그걸로 된 거다. 난 내 글의 필자이기도 하고 독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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