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벌레 또 들어왔어요~"
딸아이가 소리쳤다. 기겁하며 발성한 탓에 목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자기 소리에 자기가 더 놀라는 눈치다. 소리 크기만 본다면 불이라도 난 줄 착각할 정도. 나는 휴지를 뽑아 얼른 목소리 발원지로 뛰어갔다. 새끼손톱만 한 붉은색 점박이 무당벌레가 거실 바닥을 활보하고 있었다. 분명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았는데. 이 녀석이 들어올 곳이 없었음에도 들어왔다는 사실에 애꿎은 벌레만 나무랐다. 벌레를 거칠게 집어 밖으로 내던졌다.
벌레가 들어올 만한 곳이 있는지 살폈다. 거실 새시와 방충망을 살피던 중 천장 쪽 끝에 작은 틈이 보였다. 마침 그 사이로 또 다른 무당벌레 한 마리가 진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아~ 여기구나.' 처음부터 어디로 들어왔을지 내심 감은 있었다. 단지 거기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 가장 늦게 살폈을 뿐. 역시나가 현실이 되자 후회가 밀려왔다. 한번 할 때 제대로 할걸. 절묘한 순간에 무당벌레가 끼어 있었길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또 그대로 방치할 뻔했다. 시공 당시 게으름 피웠던 순간을 떠올렸다.
이사 후 첫 더위가 몰아치던 때. 이 집은 내 이름으로 등기까지 마쳤음에도 벌레들은 빈집 구경 오는 사람마냥 들락였다. 딸아이는 벌레만 보면 소리부터 질렀다. 어찌나 자주 지르는지 머리가 아플 지경. 틈새부터 막아야 했다. 벌레막이 문풍지와 테이프를 로켓처럼 빠른 배송으로 받은 후 직접 시공했다. 창틀을 딛고 일어서 깨끔발 한 상태에서 낑낑 대는 모습이 흡사 도둑 같아 보이기도 했다. 10분쯤 지났을까. 눈대중으로 대충 문풍지를 잘라 방충망과 새시 사이 벌어진 틈을 막았다. 막다 보니 모서리 2cm가량 막지 못한 부분이 보였다. 그냥 한 조각 떼서 밀어 넣기만 하면 되는데. 결국 막지 못했다. 귀찮음과 게으름이 협약 체결 후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고 대부분 막았으니 상관없다는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더듬었다. 구멍만 보이면 머리부터 들이미는 곤충의 습성 때문인가 아니면 매사 대충 하고 마는 내 게으름 때문인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작은 구멍 하나에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갔다. 노고가 빛을 보진 못해도 원망 섞인 눈총을 받지 말아야 하는데. 딸아이 눈빛에 등이 따가웠다. 억울했다. 다 막았다고 소리치지 말걸. 벌레 할애비가 와도 들어올 수 없다며 큰소리치던 그때가 부끄러웠다.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꼼꼼하다 보다는 덜렁댄다는 수식을 몰고 다니는 편. 공부도, 회사일도, 집안일도 마찬가지. 매번 시작은 요란했고 매듭은 헐렁했다. '이 정도면, 이만하면'과 같은 최소 노동 최대 만족을 바라는 말들만 중얼였다. 이렇게 자기 최면 몇 번 걸고 나면 마음은 편했다. 일을 그르치기라도 하면 그때는 내 잘못 아니라며 돌려 말했다. 사람이 완벽하면 정이 없다느니 인간미가 떨어진다는 등의 말도 꼭 덧붙였다. 혹시라도 있을 묻매에 대비해 쥐구멍이라도 미리 파두어야 했으니까.
글 대하는 태도라고 다를까. 처음에는 쓰겠다는 의지에 취해 몰아치며 쓰다가도 얼마 가지 못해 인내심은 바닥으로 고꾸라 졌다. 글감이 별로라서, 머리가 아파서, 시간이 없어서 같은 말들만 늘여놓았다. 꾸준한 쓰기가 어휘력을 늘려주지만 핑곗거리 또한 늘어난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걸까? 쓰고 안 쓰고를 반복했다. 계속 쓰면서도 글이 완성되는 속도가 느려지는 묘한 경험을 했다. 지지부진한 글쓰기가 계속되던 중, 서랍에 갇힌 채 방치된 글이 두 자릿수를 넘어갔다. 끄적이다 힘들면 말고, 다음날 또 새로운 주제로 끄적이고를 계속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쓰기도 내 게으름의 관성을 역행할 수 없었나 보다. 쓰다 말아도 없어지는 게 아니니 언제라도 다시 쓰면 된다 생각했다. 생각만 한 입 크게 머금고는 간만 보고 뱉었다. 글은 일상과 달랐다. 완성되지 못한 글이 쌓일수록 힘들어졌다. 쓰다 보면 비슷한 예전 글이 생각나고, 예전글 쓰려고 돌아가면 더 예전글이 생각나는 식이다. 쓰기의 굴레에 갇혀버린 듯했다. 글에도 전생과 환생이 반복된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변해갈 때쯤. 머릿속 온갖 생각들이 입 벌려 소리를 질러댔다. 글이라는 육체를 갈망하고 있었다.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 때문에 몸살 날 지경. 그렇다고 지울 수도 없었다. 머리 뜯으며 써 내려간 내 글을 영원히 지운다 생각하니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난감했다.
쓰기를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필요했다. 어떻게든 단어만 내뱉으면 쓰는 실력이야 늘겠지만 글은 나아지지 않았다. 글에 있어 대부분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있어야 할 곳에 있고, 없어야 할 곳에는 없는 게 핵심. 촘촘하고 일정한 간격의 털실이 따스한 스웨터를 만들듯 촘촘한 단어와 문장이 교차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글쓴이의 의도와 생각이 빠져나갈 구멍조차 없는 글. 천천히 또는 고스란히 내 몸에 녹아드는 그 충만했던 글을 잊을 수 없다. 나는 그런 글이 쓰고 싶었던 것 같다.
글쓰기도 삶의 연장이다. 그 습성이 글에도 그대로 나타난다면, 내가 바뀌면 되는 거다. 글쓰기에 있어서 대충이란 없다.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필요 없는 단어를 골라내야 했고, 끝까지 식지 않도록 생각의 마개를 여닫는 방법을 깨우쳐야 했다. 글쓰기가 힘든 게 아니라 내 삶의 관성과 반대로 나가는 게 힘든 거다.
매미가 창문 앞 나무 어딘가 앉아 발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더워서 땀이 나는 것인지 생각에 과부하라도 걸린 것인지 모를 열기를 느끼며 서둘러 벌레 구멍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