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와 책은 처음이지

독서에서 삶을 배우고

by 눈 비 그리고 바람

책에 빠져 산다.

차에서도 읽고, 출근길 걸어가면서도 읽는다. 점심시간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멀뚱히 앉아 동료들 밥 먹는 모습만 지켜보며 알았다. 책 빨리 읽겠다는 생각에 밥숟가락이 빨라졌다는 사실 말이다.


그저 책이 좋았다. 종이책은 종이 나름의 아날로그 감성이 있어 좋았고, 전자책은 전자책 나름의 디지털 편의성이 있어 좋았다. 언제든 꺼내 읽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이 아날로그 보다 조금 우위를 차지했다. 무엇이 되었든 중요치 않다. 빼곡히 들어선 글이 주는 이끌림에 몸만 맡기면 되니까. 글에 포옥하고 안기면 나와 현실이 맞닿은 접점은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내면에 불이 서서히 켜지기 시작했다. 세상 그 무엇보다 편안하고 따사로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나다운 생각 모두가 존중받는 곳이라 생각하니 없던 용기도 샘솟는다. 관절 이곳저곳 끼어 삐그덕 거리던 불안감도 옅어져 갔다. 자신감으로 넘쳤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해석하든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독서가 좋아지기 시작한 지점은 알 수 없다. 원래 이런 순간을 즐기던 사람처럼 누리고 있었으니까. 몇 평 되지 않는 단칸방 살다 어느 날 80평 집에 살게 되었지만 태연한 척 여유를 즐기는 모습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 정도의 짬만 있으면 책을 펼쳤다. 머리는 계속 글을 갈구했다. 알 수 없는 물음을 던지며 새로운 호기심에 이끌렸다. 밥 배와 디저트 배가 따로 있는 사람처럼 어느 종류의 글이든 꾸역꾸역 소화해 내려 노력했다. 늦깎이에 웬 글이냐며 혼자 볼멘소리도 하곤 했지만 글이 좋아지는 걸 어찌하리. 고된 일에 지친 모습이 역력하면서도 입꼬리가 위로 늘어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렸을 적, 부모님이 입이 헐도록 하는 말이 있었다. 바로 '책 많이 읽어라.' 그때는 그 말이 공부해라 라는 말 다음으로 싫었다. 읽는 행위 자체가 시간 낭비 같았다. 동영상으로 보면 시각과 청각이 동시에 자극되어 기억에 더 오래 남을 텐데 라며 유치원생 같은 투정만 늘여놓았다. 고리타분한 책은 누가 만들었냐며 태생 자체를 원망했다. 독서를 멀리 하자 부작용이 찾아왔다. 언어에 대한 독해력과 문해력이 실생활에 불필요한 기관인 양 퇴화의 절차를 밟고 있었던 것.


부작용의 범위는 생각보다 컸다. 배움의 의지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문장이 조금만 길어도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올바른 문법과 문형임에도 머릿속은 고장 난 자동문처럼 덜컹거렸다. 시험지 지문과 문제를 읽어도 무엇을 말하고 묻는지 몰랐다. 공부만 해서 머릿속 곳간만 채우면 뭘 하겠는가. 빼서 쓸 줄을 모르는데. 그때 나는 국어의 벽을 결국 넘지 못했다. 자연스레 영어도 같은 절차를 밟았다. 현상에만 반응하는 단세포 같았다. 종소리 반응하는 파블로스의 개가 이와 같을까. 산만함과 주의력 부족은 지식습득과 학습을 사치 즈음으로 간주했다. 서로의 인과 관계도 모른 채 급변하는 세상과 흙수저의 삶만 탓했다.


그런 내가 요즘은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 읽다 보니 쓸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얼떨결에 등 떠밀려 쓰기도 시작했다. 쓰기는 읽기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쉽지 않았다. 중도에 포기할까 수백 번 넘게 고민했다. 독서의 응원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이어갈 수 없었을 . 그때 등 두드려 주던 글쓰기 책이 지금 내 인생의 멘토가 되었다. 쓰면 쓸수록 쓰기가 쉬워진다거나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은 내 인생 밑바닥의 단단한 지반이 되어 주었다. 쓰면 더 읽고 싶었고 읽으면 더 쓰고 싶었다. 글만 하루종일 굴러 다니는 굴레에 빠져 살았다. 인생 쳇바퀴 같다며 월급날만 기다리는 굴레와는 또 달랐.


독해나 문해력 상승과 같은 효과만을 위해 글에 손댄 건 아니었다. 닥치는 대로 읽지 않으면 걱정이 머릿속을 잠식할게 뻔했으니까. 단지 아픔을 잊을 시간만큼만 때우겠다며 시작한 게 독서였다. 그렇게 시작한 글이 의무가 되더니 취미가 되었다. 이제는 특기까지 넘보는 중. 가랑비 옷 짓는 줄 모르고 스며든 효능이 이제야 나타나는 중인 듯하다. 단어를 읽고 뜻을 떠올리면 머릿속에서는 또 다른 시스템이 작동했다. 과거 현재 미래를 오가며 한 점으로 그 뜻을 압축했다. 다음 점이 찍힐 곳을 예측하며 비교해 나갔다. 뜻이 생각과 맞으면 눈으로 글을 훑으며 지나갔고, 다르면 다른 부분만 초점을 맞춰 머릿속 문맥을 수정했다. 도로를 감각하며 엑셀과 브레이크를 무의식으로 조절하는게 운전이듯 글에도 그 의미에 따라 완급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읽는 속도가 월등히 빨라졌고 머릿속은 복잡함 속에서 질서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독해력도 좋아졌다. 예전에는 글 읽어도 머릿속에 남는 게 별로 없었다. '싫다. 좋다. 나쁘다. 착하다'와 같은 호오만 가득한 감정만 머릿속을 맴돌 뿐. 책 한 권 다 읽어도 무슨 말하는지 몰랐다. 또 자기 자랑만 늘여 놓는구나 하며 글쓴이의 진심을 거드름으로 오해했다. 지금은 달랐다. 다른 이의 생각을 쉽게 소화할 수 있도록 감각의 촉수는 말랑말랑했다. 신념이라며 고집과 아집으로 굳어가던 내 생각은 그 촉수에 녹아 또 다른 양분을 양산하기 이르렀다. 이래서 독서, 독서하는구나 했다.


요즘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즐겨 본다. 그들의 애절하고 간절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각자의 방식은 달라고 결국에는 다 같은 곳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에 무게가 실리는 중이다. 어쩌면 내가 그들의 깊은 뜻을 담기에 그릇이 작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영영 담을 수 없을지도. 뭐가 됐든 상관없다. 읽기와 쓰기의 목적이 단순히 돈이나 명예를 구하기 위함은 아니니까. 단지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 보다 내일이 좋아지는 방식에 끌렸을 뿐이다.


어느덧 9월이 목전으로 다가왔다. 평생 덥기만 할 듯한 더위가 비 몇 방울에 한 풀 꺾이는 모양새다. 그래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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