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눈 비 그리고 바람 Oct 7. 2023
내 인생에 글이란 없었다.
혼자 책상에 앉아 글 쓰는 내 모습이 아직도 생경하다. 나는 왜 글을 쓰는지, 써야 하는지도 모른 채 용기를 할애해야 했다. 단지 써야지만 나를 땅에 발붙일 수 있을 것 같았고, '나'라는 존재의 흔적을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학창 시절 선생님께 맞는 게 싫어 반성문을 썼다. 재생용지에 내가 저지른 잘못 쓰고 또 썼다. 그렇게 쓰다 보면 내가 거의 닳아 없어지는 경험을 한다. 잿빛의 재생용지는 땀과 볼펜똥으로 범벅되어 묘한 냄새를 풍겼다. 잘못만 저지르면 맡게 되는 이 냄새가 너무 싫었다. 손목부터 저려오는 힘줄의 비틀림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반성문 쓰며 느꼈다. 내 행동에 대한 반성이라기보다는 쓰기에 대한 반감, 선생님에 대한 반항, 권리 없는 책임감을 강요받는 학생의 울분이었음을.
대학교 입시에 논술이 생겼다. 지금껏 배움의 과정 중 글쓰기 과목은 없었다. 방과 후 활동으로 독후감 쓰기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산만한 아이들이 모여 잡담이나 하는 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내가 대학 입시를 위해 논술이란 걸 해야 하다니. 어른들의 정치 놀음이라며 피해자를 자처했다. 그래도 대학은 가야 했다. 불합리한 세상을 욕하면서도 몰래 책 보며 독학으로 글을 썼다. 막상 해보니 해볼 만하다 싶었다. 모범 답안이 없었기에 가능한 자신감이었다. 결과는 결국 낙방. 고만고만한 친구 몇몇은 붙었다며 좋아했다. 같이 낙담하며 포기한다던 친구는 붙었고, 혼자 뒤척이며 글 쓰던 나는 눈물을 삼켰다. 그들의 합격을 축하하면서도 속으로는 다 운빨이라며 삶의 얄궂음을 탓했다.
대학 졸업 시즌이 다가왔다. 자소서를 써야 했다. 나에게 있지도 않았던 경험을 끌어다 내 것처럼 썼다. 자소설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이름 붙인 사람 상 줘야 한다며 혼자 웃었다. 쓴웃음이다. 해보지도 않았던 봉사활동을 했다고 써야 했고, 가보지도 않았던 기업의 체험 학습을 해봤다고 써야 했다. 회사 이름만 알았지 어떤 일을 하는지, 사훈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벼락치기로 공부했다. 없던 지식 다 짜내 기업을 칭찬하는 글을 썼다. 다 쓰고 보니 어째 국민학교 급훈 같아 웃음이 나왔다. 쓴웃음이다. 그런 기묘한 문장들을 쓰다 보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정도. 그렇게 나의 존재를 묻던 중 인사팀에 메일이 왔다. 또 낙방이다.
매 순간 글이 벽이었다. 글은 다음에 있을 다리가 아니라, 다음에 없을 좌절을 쌓았다. 글이 싫었다. 과거의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기억 저편에는 항상 글이 웃고 있었다. 이번 생은 글과 맞지 않다며 다음생을 기약해야 했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아니 싫었다. 어째 글쟁이라 하면 시궁창 같은 현실은 하나도 모르면서 책상에 앉아 돈 가지고 장난만 친다며 불신을 토로했다. 처음부터 글에 대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그럴 만도 하다며 혼자 낙담과 수긍을 반복했다. 글 없어도 된 나이가 곧 올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착각이었다. 세상은 글 못쓰고 안 쓰던 나를 속세에 가두고선 마음껏 부려먹었으니까.
세월이 흘렀다. 취업을 했고 결혼도 했다. 아이도 낳았다. 글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며 거들먹거렸다. 어느 날 삶에 대한 회의감이 봇물 터지듯 밀려왔다. 그간 몸속에 곪아있던 상처가 터진 듯했다. 늘 해오던 일과 관계의 무료함에 눌려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여름과 겨울을 오가며 겉옷의 두께만 바뀔 뿐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은 변하지 않았다. 그간 인내하고 버텨오던 삶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깨닫는다. 퇴근길, 신호 대기를 위해 잠시 정차했다. 옆으로 레미콘 차가 보인다. 트럭에 뒤에 붙어서 쉼 없이 돌아가기만 하는 회반죽차를 봤다. 자기는 이렇게 끌려다며 매일 같은 일만 반복하는데 너도 같은 신세 같다며 말하는 듯했다.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누군가가 레미콘을 전달자로 나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음은 아닐 테지. 그것은 나의 소리였고 나의 시선이었다. 내 마음에서 울리던 구조 신호였다.
나는 글을 썼다. 글이 나와 맞지 않다는 것도, 나를 위로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썼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반성문 같은 글이 꾸역꾸역 나왔다. 호기롭게 나간 가출 소년이 온갖 풍파 다 겪고 집에 돌아와 반성하는 스토리로 이야기를 엮었다. 쓰면서도 후련함과 자괴감이 동시에 공존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존심 상했다. 당장 숨 쉬고 지친 몸 뉘일 곳이 필요했다. 처음 몇 줄 쓰자 목구멍으로 손가락 넣는 기분이 들었다. 굴욕의 쓴맛이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식도를 타고 넘어왔다. 내 몸은 전심전력으로 글을 거부했다. 그래도 계속 썼다. 쓰다 보니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고 자조적인 말들이 꼬리를 물고 나왔다. 쓰면 쓸수록 갱신되는 나의 밑바닥의 깊이가 그저 놀라웠다.
그동안 찌꺼기로 막혀 있던 엔진이 돌아가며 매연을 토해내는 떨림이 느껴진다. 목구멍에 막혀있던 오염된 토사물 같은 것들이 튀어나왔다. 헛구역질과 구토를 반복했다. 목에서 올라온 검은 물이 빠지자 무서울 것이 없다는 기분이 만연하다. 더 이상 감출 것도 망가질 것도 없다. 속 시원하게 글로 써내고 나니 세상에다 파산신청하고는 '그래서 어쩌라고' 하며 따지는 기분이 들었다. 죄짓고 살다가 들켜서 배 째라는 기분이 아니었다. 죽도록 열심히 살았지만 나아지지 않는 삶에 대한 분노였다. 쓰다 보니 나에게 묻고 싶었고, 세상에다 따지고 싶었다. 샛길로 빠져 허우적 대는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사막 한복판에 집 짓고는 사는 게 어렵다며 죽을상으로 살아온 내가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글은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혼자 쓰면서 묻고 답하고 수긍하는 방법을 알려줄 뿐. 내 한 몸 비집고 들어갈 곳 없어 보이는 촘촘한 세상도 글이라는 렌즈를 들이 밀면 느슨한 틈서리가 보인다. 사는 건 고달프고 쓰는 건 더 힘들다던 과거가 떠올랐다. 처음부터 나를 가로막던 글이라는 벽은 어쩌면 높디높은 디딤돌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