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글의 중력

by 눈 비 그리고 바람

글에 휘둘리는 기분이 익숙하다.

쓰는 거 힘들다며 손사래 칠 땐 언제고, 이제는 안 쓰면 허전하다며 몸서리친다. 놀러 가서도 스마트폰 붙들고 끄적이는 모습이 그저 억척스럽기까지 하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간절하게 만드는 것인지 궁금했다.


안 쓰는 날에는 가슴에 맺힌 답답함을 삭이지 못해 어쩔 줄 몰라했고, 쓰는 날에는 넘치는 생각을 제대로 담지 못해 버려지는 감정을 아쉬워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본다. 글쓰기가 아직 익숙지 않아서 그런 거라며 혼자 다독여 봤지만 불안하긴 마찬가지. 언제쯤 안정궤도에 진입하게 될지 상상해 봤다. 쓰는 시간과 글의 품질이 정확하게 비례하는 그런 날이 오길 바랐다.


글은 안정감 있게 쓰는 방법을 쉽게 알려 주지 않았다. 쓰면 쓸수록 잘 써야겠다는 기대만 늘어갈 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단어나 기교 정도는 늘었지만, 투자한 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초라해 보였다. 여전히 불안하긴 마찬가지. 지금껏 노력 비례 공식이 통하지 않자 당황하는 눈치다.


나는 노력이 변수로 들어가는 공식 하나를 알고 있다. f(x) = y라는 함수에 노력이라는 값 x를 넣으면 그 결괏값이 도출되는 지극히 단순한 공식 말이다. 노력이 크면 결괏값도 좋았다. 서로 간에 교환비율이란 게 존재하긴 했지만 어찌 됐건 x와 y는 비례했다. 이는 학창 시절에도 통했고 글을 알기 전에도 통했던 공식이다. 지금껏 예외는 없었다. 절대 불변의 진리 같은 이 공식에는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노력은 어떻게든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을 약속했다.


글도 같은 줄 알았다. 노력 비례 공식에 넣었지만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 글은 역시 난놈이었다. 내 능력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자기 기분이 우선이었다. 쓰다가도 조금만 수가 틀리면 더 이상 못쓰게 했다. 아니면 엉뚱한 결과를 가져와 나를 놀려댔다. 오만가지 방법으로 나의 노력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지금쯤이면 나도 굴복하고 때려치워야 하는 게 정상이겠지. 하지만 나와 글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당기는 힘이 클수록 부딪혔을 때 그 반발력도 크다. 어쩌면 글에도 비슷한 힘이 작용할지도. 내가 필요에 의해서 글을 전력으로 당겼고 그 힘에 못 이겨 튕겨나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이대로 글을 놓으면 다시 쓰는 삶 이전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오히려 내 모든 것을 쓸고 지나간 뒤라 더 비참한 삶을 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휩싸였다.


이제는 글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못된 남자에 끌리는 여심처럼 못돼 먹은 글에 더 끌리는 이유가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음에 매력 있고 설령 마음대로 된다 하더라도 다시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마음 졸이는 것 같다. 글의 중력에 끌려 다니더라도 삶에 놀아나는 기분 보다야 낫겠지 했다. 언제 끊어질지 모를 힘이지만 언제든 작용하는 서로의 힘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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