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뒤끝과 글

by 눈 비 그리고 바람

나는 뒤끝 있는 사람이다.

뒤끝의 사전적인 의미는 좋지 않은 감정에 대해 얼마나 품고 표현하는 것에 대한 척도를 나타내는 단어. 요즘은 작렬이라는 동사와 어울려 다니며 사람을 더 주눅 들게 만드는 주범이 되는 거 같다.


자신은 뒤끝 없다는 말 하는 사람을 가끔 본다. 나는 그 말을 하는 사람 의중이 궁금했다. 뒤끝이 없으니 오해와 나쁜 감정을 투척하더라도 없었던 일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지, 아니면 자신은 그러하니 너도 내가 하는 말에 별 뜻을 두지 말아라고 강요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무엇이 되었든 좋은 의도로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더 뒤끝 있는 사람처럼 보일뿐이다. 나쁜 감정을 남김없이 따라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나쁜 감정은 좋은 감정보다 수십 배에 달할 정도로 여운이 강하고 깊다. 시간의 치유력에 면역이라도 생기는 날에는 영원히 머릿속을 떠다니며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나는 대놓고 뒤끝 있는 사람이다. 나쁜 감정은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 내 마음속을 맴돌았다. 얼마 남지도 않은 긍정적인 기운을 갉아먹으며 공허함으로 바꿔갔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는 경우도 다반사. 그 사람의 독기 서린 말과 표정이 포개지며 내 혈관 속 유속이 터질 듯 느껴졌다. 내 몸은 동상 걸린 사람처럼 덜덜 떨렸고, 내 가슴은 수백 명 대중 앞에 서있는 사람처럼 쿵쾅거렸다.


눈 감으면 어김없이 그 음산한 기운이 온몸을 덮쳤다. 보통의 감정과는 차원이 다른 감각. 오감의 경계를 넘나드는 초월적인 감각은 나를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로 안내했다. 이런 기운에 잠식되면 쉬는 게 두렵고, 자는 게 무섭다. 차라리 일에 치여 쓰러지고 싶다는 생각이 최선책으로 떠오를 정도니까. 그때만큼은 마음속 찝찝함을 털어내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전화해 내 의식의 상태와 본인의 의중을 따져 묻고 싶었다. 정말로 그랬다면 내 감정이야 개운하겠지만, 뒤늦은 감정표현으로 뒤끝 작렬하는 사람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것 같았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감정의 끈을 이성이 겨우 부여잡고 있었다.


어떻게든 뒤끝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쿨하다는 말이 듣기에도 좋고 보기에도 좋았으니까. 그런 시도를 할 때마다 이유 없는 희생을 치러야 했다. 내 감정의 9할이 타인이 던진 돌멩이에 뭉개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아무것도 아닌 듯 행동해야 했으니까. 기분 나쁜 사람은 난데,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람도 나였다. '왜 또 나지?'라는 생각이 들자 기분은 더 엉망이 된다. 싫으면 싫다고 표현할 권리조차 나에게는 없다는 말인가. 그런 나의 행동을 가지고 속이 좁다느니 뒤끝이니 운운하고 싶은 사람은 그래도 된다. 자신은 남에게 피해 주고도 남 탓만 할 사람이니까. 나를 걸러서 만나달라고 외치는 꼴이다. 오히려 내가 감사하다.


뒤끝이 있다고 해서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글쓰기에는 유리하다. 감정에 대한 반감이 클수록 글에 닿는 촉감은 묵직하다. 당시 느꼈던 감정을 가져와 생생하게 나열할 수도 있고, 감정 끝에 맴도는 쓴맛을 맛깔나게 쓸 수도 있다. 감정 촉발의 순간을 짐작하는 것보다 감정이 남긴 여운을 밟으며 쓰는 편이 글로 표현하기에는 더 좋았다. 글이 더 간결하고 단정했다. 나아가 혼자 복닥거리며 쓰다 보면 악감정의 복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감수분열이 일어났다. 마음은 한결 더 편해진다.


큰 감정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다 보면 사사로운 감정들의 잔가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무수히 뻗쳐 있음에 놀란다. 그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상대방의 욕망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겠구나 한다. 희비를 교차하며 앓고 쓰고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글 한편 뚝딱이다. 그간 나를 괴롭히던 열감도 떨림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감기기운에 절여진 머리가 푹 자고 일어났을 때의 개운함으로 가득하다. 별것 아닌 일로 웬 호들갑이었냐는 생각이 들 정도.


뒤끝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은 필요 없는 것 같다. 뒤끝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자기 그릇이 작음에 대한 면피를 위한 말로 보일 뿐이다. 할 말 있으면 그 자리에서 해도 된다. 뒤에 가서 혼자 끙끙 앓으며 후회하는 것보다 감정표현이라도 제대로 하는 편이 낫다. 자신에게도 상대에게도 이롭다. 어쩌면 오해에서 빚어진 해프닝일 수도 있다.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 사람과의 관계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관계라는 게 뒤끝의 유무나 쿨함 정도로 유지되는 게 아니니까. 이도저도 싫다면 그냥 글로 쓰자. 한바탕 불평하고 나면 온탕과 냉탕을 수십 번 오간 듯 후련해진다. 감정 표현 연습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은 없을 거 같다.


그날 글로 쓰고 개운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간밤에 그 사람과 화해하는 꿈이라도 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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