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사할 집을 보러 다닌다.
방을 보고 채광을 봐야 하는데 사람 사는 모습에 계속 눈길이 간다. 아이는 몇 있으며 취미는 어떤 게 있고 어떤 일을 하는지, 이 방 저 방을 기웃거리며 호기심이 그득한 나를 본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사는 모습은 지겹도록 봐왔지만 남이 사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운 기회긴 하다.
소파 구석에 끼인 양말, 부엌에서 나는 쿰쿰한 찌개 냄새, 아이들이 먹다 남은 과자 봉지, 곳곳에 쌓여있는 옷무덤까지. 지저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지점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외모, 나이, 직업, 종교 뭐 하나 나와 같은 게 없었지만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집이 지저분해서 미안하다는 집주인의 말에 손사래 쳤다. 오히려 내가 고맙다는 말이 턱밑까지 올라왔다. 겨우 참았다. 집이 너무 마음에 드는 것처럼 보이면 안 깎아 줄듯 싶었으니까. 어찌 됐건 나도 남들과 비슷하게 살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극히 사사로운 지점에서 뜻밖의 감정을 길어 올렸다며 좋아했다. 이사할 집으로도 합격이고 글감으로도 훌륭하다며 혼자 미소 지었다.
그동안 내가 별나게 살고 있지 않았음을, 삶을 이어주는 매 순간이 굴곡일지언정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았음에 안도했다. 나는 그 해답을 어떻게 구할 수 있었을까? 집주인이 말해준 것도 아니고 그 집 방구석을 뒤적이다 후광이 비치는 구절을 찾아낸 것도 아닌데 말이다. 본래 사람 사는 모습을 목격한 지점에서 확신이 섰던 것 같다. 평소 집들이나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깔맞춤 한 듯 비슷한 톤을 뽐내는 가구들, 먼지하나 없는 청결함, 어디를 가도 피어나는 향긋함까지. 흡사 호텔방에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손님이 와서 깨끗하다기보다는 '우리는 원래 이렇게 살아요'라고 말하는 듯해서 더 자괴감 들었다. 그때마다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정말 별나게 살아왔던가 아니면 깔끔한 집만 골라 방문했거나 둘 중 하나겠지 했다.
나는 평일과 주말, 직장과 집 매번 같은 굴레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가 보고 싶었다. 그 순간의 삶을 절단해 단면을 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깐. 오늘 우리의 급습으로 비슷하게나마 그 절단면을 보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갑자기 눈밑 어딘가에서 따스한 수분이 느껴졌다. 너는 지금껏 잘해왔고 남들처럼 잘 살고 있다는 말을 누군가가 귓속말로 전하는 듯했다. 그건 눈물이었다. 내가 정상일 수도 있음을, 깔끔한 사람들만 사는 것은 아님에 안도하는 눈물이었다. 더 봐야 할 게 있다며 작은방으로 피신한 후 몰래 수분을 훔쳤다.
어쩌면 글 쓰며 한숨짓고 탄식하는 것도 남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가끔 책 읽다 보면 다른 작가의 푸념을 목격할 때가 있다. 백지 앞에 아득하다는 말, 글밥으로 먹고사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글쓰기가 힘들다 한다. 쓰기의 어려움과 창작의 고통을 유려한 문장으로 만나는 일만큼 매력적인 일은 없다. 쓰기의 어려움에 진저리 치는 문장에서 피어난 진심을 본다. 순간 내 마음도 환해진다. 쓰기가 나만 어려운 게 아니었다니, 나는 이런 글을 만나면 격하게 반갑다. 쓰는 사람들의 고통에 절여진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된다. 수십 년간 떨어져 지낸 이산가족처럼 어색하지만 한 핏줄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글은 달라도 고통을 느끼고 극복하는 지점은 모두 비슷한 듯 보였으니까.
예전에 나는 미문을 쫓았다. 그런 글을 메모장에 모으며 삶의 불안을 버텨냈다. 내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동경을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인간에게서 느꼈다.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 이제는 그런 글을 읽으면 글쓴이의 눈물이 보인다. 쓰기의 고통을 정면으로 돌파한 흔적, 그 삶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낮은 한숨 소리가 이제는 내입에서도 들려오는 듯하다. 자신을 갈아 넣으며 써 내려간 문장에서 그들의 넋두리를 본다. 그들을 닮고 싶었다. 아무거나 써도 시가 되고 소설이 되는 비법이 아니라, 통증을 삼키며 써내려 갈 수 있는 마음의 단단함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만 숙이는지 모르고 숙이는 존재에 탄복하고 그런 글에 감탄했다.
사람 사는 거 별거 없다. 어디에 살든, 어떻게 살든 고단함의 종류와 빈도는 달라도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힘들지만 살아가는 행위 자체에서 존재의 고귀함을 보듯, 글쓰기도 마찬가지 같다. 유명한 작가, 베스트셀러 저자라고 해서 책상에만 앉으면 영감님이 찾아와 행복한 글쓰기를 약속하지 않더라. 부단히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나아지면 글이 되고, 못해지면 폐기되기도 하는 것이 글이 가진 운명 같다.
쓰다 보면 써지는 게 글이다. 글 쓰는 거 별거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