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새벽과 글

by 눈 비 그리고 바람

눈을 떴다.

커튼 사이로 어둠이 새어 나왔다. 밖은 깜깜하기도 하면서 깜깜하지 않기도 했다. 어둠과 밝음 사이 짓눌려 옴작달삭 못하는 세상의 소리에 귀가 멍하다. 새벽임이 분명하다. 나에게는 알람이 없어도 새벽의 정적을 감지하는 능력이 언제부턴가 주어졌다.


요즘 들어 이유 없이 새벽에 깨는 일이 잦다. 특이함 없이 잠을 잤음에도 새벽만 되면 눈을 뜨는 이유가 궁금하다. 늙음에서 오는 부산함일까 아니면 하루의 질서를 점지하는 새벽의 기운 때문인가. 무엇이 되었든 나쁘진 않다. 새로운 감각의 촉수가 생겨난 것이기도 하니까.


예전에는 눈을 뜨면 알람이 울었다. 지금은 눈을 뜨면 새벽이 운다. 새벽의 어스름함과 고요의 경계가 섞이며 공명 하는듯한 울림이 느껴진다. 나지막하게 몰아쉬는 세상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딱 이런 소리이겠거니 했다. 도둑고양이처럼 들어와 쓰레기를 담고 가는 차의 기계음이 이따금씩 메아리쳤다. 새벽 소리에 깨는 날에는 이상하리만큼 수면과 의식의 경계가 선명했다. 좀 전까지 코를 골며 자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 의식적으로 골고 있었다라고 하는게 맞겠다. 무엇이든 집중해서 할 수 있을법한 새벽이 온 것이다.


나의 새벽 사용법은 간단하다. 놀란 듯 일어난 나를 진정시키는 이 우선. 다음은 어스름한 공간에 나를 가만히 내려놓기만 하면 된다. 얼마 후 주파수가 맞는다. 신이 난 강아지 마냥 발가락을 흔들어 댄다. 무어라도 해야겠다는 의지가 샘솟는다. 예전 같았으면 이불속에 몸을 맡기고 출근까지 남은 시간을 헤아렸겠지만 지금은 글을 쓰러 간다. 어떤 글도 쓸 수 있을 것 같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근본 없는 자신감을 확인하고 싶었다. 새벽이 차려준 부지런함에는 분명 특별한 효능이 있었다. 갑자기 얻은듯한 능력에 기분이 묘하다. 새벽에 약수터 나가는 사람처럼 머릿속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생각을 길어 올렸다.


생각의 찰나를 글로 엮을 줄 몰랐던 나. 그만큼 삶의 격동에 지치고, 얼기설기 엮여 있는 인연을 풀어내기 어려워했다. 쓰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였다. 새벽 기운에 취한 감정은 마음속 풍광을 비틀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욕망으로 가득 찬 안개가 걷히자 날렵한 생각의 고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멈춘듯한 시간 속에 오랫동안 고아낸 진국 같은 글이 튀어나왔다. 술술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움직이지 않는 생각의 고임은 한참 동안 쓰고도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어느새 짙푸른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그 푸르스름한 기운에 눈을 돌리자 누군가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했다. '내가 너 그거 알려주려고 새벽에 깨웠다'라고.


오늘은 유난히 글이 더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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