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벌레와 새시

by 눈 비 그리고 바람

"아빠 벌레 또 들어왔어요~"

딸아이가 소리쳤다. 기겁하며 발성한 탓에 목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자기 소리에 자기가 더 놀라는 눈치다. 나는 휴지를 뽑아 목소리 발원지로 뛰어갔다. 새끼손톱만 한 붉은색 점박이 무당벌레가 거실 바닥을 활보하고 있었다. 분명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았는데. 이 녀석이 들어올 곳이 없었음에도 들어왔다는 사실에 애꿎은 벌레만 나무랐다. 벌레를 집어 거칠게 밖으로 내던졌다.


벌레가 들어올 만한 곳을 살폈다. 거실 새시를 살피던 중 위쪽 끝에 작은 움직임이 보였다. 마침 또 다른 무당벌레 한 마리가 잠입을 시도하고 있었다. '여기구나.' 처음부터 어디로 들어왔을지 내심 감은 있었다. 단지 거기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 컸을 뿐. 그래서 가장 늦게 살폈다. 역시나가 현실이 되자 후회가 밀려왔다. 한번 할 때 제대로 할걸. 절묘한 순간에 무당벌레가 끼어 있었길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또 그대로 방치할 뻔했다. 시공 당시 게으름 피웠던 순간을 떠올렸다.


이사 후 유래 없는 더위에 당황하던 때가 있었다. 이 집은 내 이름으로 등기까지 마쳤음에도 벌레들은 빈집 구경 오는 사람처럼 들락였다. 딸아이는 벌레만 보면 소리부터 질렀다. 어찌나 자주 지르던지 머리가 아플 지경. 새시 사이 틈새부터 막아야 했다. 벌레막이 문풍지와 테이프를 로켓처럼 빠른 배송으로 받은 후 직접 시공했다. 눈대중으로 문풍지를 잘라 방충망과 새시 사이 벌어진 틈을 막았다. 막다 보니 모서리 2cm가량 막지 못한 부분이 보였다. 그냥 한 조각 떼서 밀어 넣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결국 막지 못했다. 아니 막지 않았다가 맞겠지. 귀찮음과 게으름이 협약 체결 후 서로 악수를 나누고 있었고, 대부분 막았으니 상관없다는 나름의 이유 또한 박수를 치고 있었으니까.


이번 사태의 원인을 더듬었다. 구멍만 보이면 머리부터 들이미는 곤충의 습성 때문인가 아니면 매사 대충 하고 마는 내 게으름 때문인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작은 구멍 하나에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갔다. 노고가 빛을 보진 못해도 원망 섞인 눈총을 받지 말아야 하는데. 딸아이 눈빛에 등이 따가웠다. 억울했다. 다 막았다고 소리치지 말걸. 벌레 할애비가 와도 들어올 수 없다며 큰소리치던 그때가 부끄러웠다.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매사 덜렁댄다는 수식을 몰고 다니는 편이다. 공부도, 일도 마찬가지. 시작은 요란했고 매듭은 헐렁했다. '이 정도면, 이만하면'과 같은 최소 노동 최대 만족을 바라는 말들만 되뇌었다. 이렇게 자기 최면 몇 번이면 죄책감은 금방 수그러든다. 안도에 한숨을 쉬었다. 이런 달콤한 위안도 잠시 뿐. 마침 공부하지 않았던 지면에서 문제가 나왔고, 한번 더 확인하지 않았던 곳에서 일이 터졌다. 단 몇 분만 더 봤더라면 하며 혼자 낙담하곤 했다. 이때마다 또 인간미를 들먹이는 보호본능이 솟구쳤다. 사람이 완벽하면 정이 없다느니 인간미가 떨어진다는 등의 말로 게으름을 두둔했다.


글 대하는 태도라고 다를 것 없다. 처음에는 쓰겠다는 의지에 고무된 채 쓰다가도 얼마 쓰지 못하고 인내심은 바닥으로 고꾸라 졌다. 글감이 별로라서, 머리가 아파서, 시간이 없어서 같은 핑곗거리만 늘여놓았다. 쓰기는 써야겠고 쓰다 막히는 구간을 돌파하기는 또 싫고, 이 둘 사이를 오가며 낙서 같은 글만 늘어갔다. 글쓰기 습관은 매일 꾸준히 이어 갔지만, 완작을 양산하는 속도는 오히려 매일 안 쓰던 날보다 더 느려지는 경험을 했다. 지지부진한 글쓰기가 계속되었다. 서랍에 갇힌 채 방치된 글이 어느덧 두 자릿수를 넘어갔다. 끄적이다 힘들면 말고, 다음날 또 새로운 주제로 끄적이고를 반복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내 게으름의 관성은 글쓰기 근육마저 짓눌렀다. 생각만 크게 한 입 베어 물고는 간만 보고 뱉었다. 몇 자 끄적이고 말고를 반복했다. '쓰다 말아도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이만하면 많이 썼네'라며 스스로를 위안 삼았다. 완성되지 못한 글이 많아질수록 죄책감도 쌓였다. 이전 글을 쓰다 보면 예전 글이 생각나고, 예전글 쓰려고 돌아가면 더 예전글이 생각나는 식이다. 쓰기의 굴레에 갇혀버렸다. 글에도 환생이 있고 전생과 현생이 반복된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변해갔다. 온갖 머릿속 생각들이 입 벌려 소리를 질러댔다. 글이라는 육체를 갈망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비단 글쓰기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마음가짐이 헐렁하면 무엇을 쓰더라도 스스로의 검열을 통과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단어만 내뱉으면 쓰기 실력이야 늘겠지만 모든 문자가 글이 될 수는 없다. 글에 있어 대부분이라는 말은 있을 수 없으니까. 나도 만족할 수 없는 글이 남이라고 다를 것 없다. 글은 있어야 할 곳에 있고, 없어야 할 곳에는 없는 게 핵심. 촘촘하고 일정한 간격의 털실이 따스한 스웨터를 만들듯 촘촘한 단어와 문장이 교차하는 부지런한 글을 쓰고 싶었던 거 같다.


글쓰기는 삶의 거울이자 연장선이다. 그 습성이 글에도 그대로 나타난다면, 글을 고칠게 아니라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필요 없는 단어를 골라내고, 글의 강약이 끝에 가서 식지 않도록 생각의 열기를 보존하는 방법을 깨우쳐야 했다. 글쓰기가 힘든 게 아니라 내 삶의 관성과 반대로 가야 해서 힘든 것 같다. 그 첫 번째 방법이 글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해도 물리지 않고 실패했다고 해서 빚더미에 앉을 일은 없으니 말이다.


매미가 창문 앞 나무 어딘가 앉아 발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더워서 땀이 나는 것인지 생각에 과부하라도 걸린 것인지 모를 열기를 느끼며 서둘러 벌레 구멍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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