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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Nov 19. 2023

우리 집 바로 옆 마트에는요

 우리 아파트 바로 옆에는 마트가 있다.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겉옷을 입었다. 슬리퍼를 끌며 현관을 나섰다. 바닥에는 낙엽이 청승맞게 널부러져 있었고 이따금씩 불어오 바람에 낙엽이 날려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곤 했다. 그때마다 발가락이 시려 오무렸다 폈다를 복했다. 다시 돌아갈까 하다가도 바로 앞이라며 걸음을 재촉했다.


우리집 공동현관을 나와 오른쪽으로 30걸음 정도 걸으면 마트가 나온다. 나는 어느 때처럼 복슬한 아이보리색 플리스에 손을 찔러 넣은채 비척비척 마트로 향했다. 유리문 넘어로 창백한 얼굴에 미간을 반에 반쯤 찌푸리고 있는 주인아저씨가 보였다. 문이 열리면서 옅은 종소리가 땡글땡글 울렸다. 오늘은 쳐다보겠지 했다. 역시 그는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쪽으로 쳐다보기만 해도 내가 먼저 인사했을텐데. 멋쩍은듯 입맛을 다시며 마트로 들어섰다.


처음 이사 후 바로 앞에 마트가 있다며 나는 그렇게 좋아했다. 집옆에 문방구가 생겼다며 좋아하옛날 그 아이처럼 말이다. 이내 달려가 칼이며 드라이버며 빗자루 등 이사에 필요한 용품을 샀다. 당시에도 주인아저씨는 쌀쌀맞았다. 들떠있는 아이조차 과묵한 아이로 만들 정도였으니. 이사 하기전 집 근처 마트 주인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계산을 하러 가도 절대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노룩으로라도 인사 한번 할법한데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 사람에게 먼저 인사해 봐야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봐왔던터라 잠자코 있었다.


그는 물건을 집어 들고는 바코드를 찾느라 제품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손목을 돌릴 때 마다 옅은 가래 긁는 소리를 냈다. 눈도 나빴던지 도끼눈을 뜬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스캔이 끝나자 던지는 것도 아니고 바닥에 놓는 것도 아닌 모호한 경계점에서 물건을 건넸다. ‘와~’ 속으로 절로 탄식이 나왔다. 나는 이런 상황이 생소했다. 이렇게도 물건을 전달할 수 있구나 하며 혼자 신기해했다. 기분 나쁨과 어색함을 번갈아 느꼈다. 마냥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그저 웃음만 나왔다.


계산이 끝나자 포스기에 합산된 금액이 떴다. 나는 궁금했다. 과연 금액을 말해줄지 말지를 혼자 기대하고 있었던 거다. 그는 역시 과묵했다. 가래낀 숨소리가 신경쓰였던지 연거푸 기침을 하고는 손을 내밀었다. 아~ 이게 카드 달라는 말이구나 싶었다. 넋을 놓고 보다가 놀란 듯 스마트폰을 꺼내 건넸다. 그는 내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계산을 하더니 영수증을 낚아채 포개 들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그는 나의 손을 못 본것인지 자기 앞 계산대에 슬며시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다음 손님 바구니에 손을 가져갔다. 갈 곳 잃은 손은 인형 뽑기라도 하듯 천천히 움직여야 했다. 민망했다. 누가 와서 악수라도 해줬으면 싶었지만 그런일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계산을 하고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궁금했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말이다. 분명 기분 나빠야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싱숭생숭했다. 가까이에 마트가 있다고 그렇게 들떠 있던 내 오지랖에 괜히 미안했다. 그 주인아저씨는 분명 그날 집에 우환이 있었을 거라 확신했다. 그 이후로도 두 번, 세 번의 방문이 있었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다. 그런 주인의 태도가 기분 나빴다. 머 저런 아저씨가 다 있냐며 혼자 험담했다. 사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다른 마트에 갈 수 있다. 기분이 나쁘면 안 가면 그만일 텐데 혼자 속 끓이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제는 살짝 포기하는 눈치다. ‘주인이 무뚝뚝하면 어때 가까운 게 최고지’ 하며 나 스스로를 위안 삼는다. 나는 그 마트로 발길을 옮겼다. 그 사람이 친절하지는 않지만, 거리가 친절했으니까. 이제는 혼자 상처받지도 않고 이상한 감정을 매만질 필요도 없다. 그렇게 대하는 아저씨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되려 무엇을 살지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은 듯했다. 패션쇼에 모델들 얼굴이 너무 이쁘거나 잘생기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에 다 좋은 것이란 없다. 이사 전 마트의 주인은 친절했지만 조금 걸어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나는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가지 친절을 사러 가지 않는다. 내가 사고자 하는 물건이 있고, 하자가 없으면 그만이니까. 내가 기분이 별로인 이유는 그 아저씨 때문이 아니라 그 아저씨를 바라보는 태도를 꺼내 나만의 잣대위에 올려 놓아야 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계산을 하려고 줄을 섰다. 내 앞에는 교복을 입은 여중생 두 명이 수다를 떨며 까르르 웃고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그 여중생에게도 한결같은 무뚝뚝함과 시크함으로 일관했다. 기분 나빠야 할 지점은 있었지만, 여중생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서로 아이스크림 먹을 생각에 되려 더 기분 좋아 보였으니까. 순간 아저씨의 무뚝뚝함에서 지 모를 익숙함이 느껴졌다. 친근함도 같이. 그리고 혼자 슬며시 미소 지었다.


‘나도 이 동네 사람 다됐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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