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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May 06. 2024

AI의 학습된 감수성

 얼마 전 AI에 대해 쓴 적 있다.

인공지능이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한 보고다. 나는 혼자 반나절 넘게 생각했다. 인류를 대표하는 기분으로, 인공지능과 싸우겠다는 심정으로, 글 한편 더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인간은 창의적이고, 기발하다? 이 사실은 이제 잘못된 명제다. AI와 몇 번 대화해 보면 알 수 있다. 인간성을 대표할듯한 지적이고 이지적인 창조력이 AI가 가장 좋아하는 능력이란 사실을. 오히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자신의 엉뚱함을 합리적이고 말이 되게끔 펼쳐 보인다. AI는 이미 아는듯한 눈치다. 얽매이지 않음과 인간적이지 않음에서 기발함이 나온다는 사실 말이다. 당연하지 않음, 인간 사회에서는 보편적이지 않음, 생각지도 못한 일이지만 정리된 패턴을 보이는 일이 AI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단점을 찾기 위해 그 무엇도 해봤다. 세상 엉뚱함으로 무장해 봐도 역시 결과는 다르지 않다.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게임이 안된다고 봐야겠지. 그럼 뭘로 이길 수 있을지 한참을 고민했다. 생각하면서 화면을 봤다. 깜빡이는 커서 옆에 떠있는 한 문장이 눈에 거슬린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단호하면서도 오만하기도 하고 얄밉기까지 하다. 자신감 넘치는 문장이다. 그 위력을 알고 봐서 그런지 더 압도되는 기분이 든다. 무엇이 그들을 자신감 넘치게 만드는 것일까? 도대체 나는 무엇으로 그들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논리, 정보력, 기발함, 상상력, 창의력, 필력, 번역, 속기, 모두 승산이 없었다. 이 정도는 내가 낫겠지 싶어 시켜보면 이내 위축되고 만다. 그러던 중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사소하면서도 구체적인 경험, 그리고 그런 경험에서 오는 사사로움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모든 이별 이야기에 공감할 듯한 표정인 사람에게 묻어나는 애잔함. 깊은 주름 페인 할머니가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파는 나물거리를 보며 느끼는 뭉클함. 추적추적 비가 오는 길, 홀로 우산 들고 걸으며 부산한 빗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떠오르는 과거의 추억들까지. 분명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한 곳인데, 슬픈 생각을 하면 또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드는 곳이지 뭔가. 반대되는 것들의 접점에서 일어나는 이질감은 괜한 감수성을 자극한다. 살아있음과 깨어있음을 서로 느끼게 한다.


AI는 아무리 똑똑해도 이런 감정을 알 수 없다. 물어보면 대답은 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직접 느낀 것이 아닌 누군가의 글에서 가져와 자동응답기처럼 내뱉는 글이었으니까. 내가 조금만 다르게 질문하면 자신은 생성형 AI라며 답을 회피했다. 이런 회피가 괜히 반갑다.


어쩌면 나는 인공지능에 대항할 단서를 찾은 것일지 모른다. 아무리 발전을 거듭하더라도 따라 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음에 확신한다. 하나의 사물을 타인의 이야기로만 느끼는 것이 아닌, 자신의 오감을 동원해 공감할 수 있는 능력. 묘하게 섞이고 부딪히고 이탈하며 하나의 다른 감정으로 천이되는 과정, 이런 과정에서 감수성이 발달하고 감정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공감은 타인의 생각을 자신에게 비춰봄에 오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말이 기폭제가 되어 자신의 기억을 합리화하는 과정인 것이다. AI는 죽을 수도 없지만, 살아날 수도 없다. 묘한 감정의 하늘거림을 영원히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먼 훗날 그들도 오감을 느끼는 신체를 가질지도 모른다. 인간만큼 스스로 자각하고 후회하며 공감의 지점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왜냐하면 느낄 수 있음에 대한 실체를 경험이 아닌 학습된 결과물로 받아들일 것이니까.


이왕 글 쓸 것이라면 그들과 차별화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냥 글을 쓰겠다가 아니라, 가장 인간다운 글을 쓰고 싶었다. 고통스럽고 단조로운 삶에 뒤척이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보면 분명 공감할 수 있을 인간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쉽게 펜을 들지 못했을지도. 앞으로는 더욱 사사로운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너무 사소하지만 인간적인 이야기 말이다.


언젠가는 그들이 우리를 뛰어넘을 것이다. 진실처럼 다가올 이 말이 무섭기까지 하다. 그때는 정말로 늦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처럼 모든 것을 다 가진 그들이, 감정을 창조할 수 없어 복제하고 다니며 눈물 흘릴지도 모를 일이다. 가끔 웹서핑 하다 보면 ‘로봇이 아닙니다’를 증명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런 걸 왜 하냐 하면서도, AI가 하도 설쳐대니 그럴 만도 하겠다 했다. 앞으로는 그들이 우리를 차단하기 위해 문제를 내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나는 인간이 아닙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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