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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May 16. 2024

라면을 삶다. 삶을 살다.

 나는 본디 라면을 좋아한다.

라면은 인스턴트 음식이다. 감칠맛, 깊은 맛, 짠맛, 매운맛을 다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나의 소울푸드다. 빠지지도 않는 살 때문에 다이어트에 반발심이 생긴다거나 혼자 저녁을 먹어야 한다면 어김없이 선택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라면은 팔색조 같은 매력이 있다. 기쁠 때 먹으면 더 기분이 좋아져서 좋고, 슬플 때 먹으면 위안이 돼서 좋다. 밖에서 먹으면 밖이라서 좋고, 안에서 먹으면 안이라서 좋다. 무엇보다 어떤 식재료를 넣던지 간에 맛의 융화가 잘 이루어진다. 분명 얼큰한 국물과 꼬들한 면에는 스펀지가 있는 게 분명하다. 무엇을 넣어도 잘 흡수한다는 게 포인트다. 하나씩 더해가는 식재로 만큼 하나 이상씩 변해가는 라면맛에 뿌듯함을 느끼던 때가 있었다.


먹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맛을 욕망했다. 물이 뽀글뽀글 끓으면 수프와 면을 털어 넣고도 더 넣을 것이 없는지 냉장고를 뒤적인다. 만두, 김치, 계란, 고추, 파, 액젓, 굴소스 등 오만가지 첨가물을 넣어가며 어떻게 맛이 변하는지를 기억했다. 역시 라면에는 뭐든 들어가야 맛있다며 혼자 면치기를 해댔다.


요즘은 라면 본디의 맛에 끌리는 중이다. 언제부터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라면이라는 음식 본연의 맛을 느끼고 싶었다. 8살 때 처음 라면을 먹었던 시절이 생각났다. 50원짜리 쇠고기 라면 몇 개 가지고 가족이 둘러앉아 후후 불어 먹던 그때. 아빠는 매번 냄비뚜껑을 선점하시곤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큰사람이니 제대로 된 그릇에 먹고 아빠는 냄비 뚜껑에 먹어도 된다며 자식사랑을 강요하셨다. 아빠 한 젓가락에 라면 한 개가 없어지던 그때, 마음껏 먹지 못했던 그 라면 본연의 맛이 그립더라.


라면 봉지 뒤에는 몇 줄의 레시피가 나온다. '물 550cc 끓인 후 라면과 분말, 건더기 수프를 넣고 4분 더 끓이면 됩니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다. 그만큼 조리법에도 꾸밈이 없다. 요즘은 딱 레시피 대로만 끓여 먹는다. 정량 정시 조리로 해 먹으면 바로 알 수 있다. 먹기 딱 알맞은 꼬들함과, 짜기, 맵기가 묘하게 어울리며 미각을 자극한다는 사실 말이다. 재료를 많이 넣으면 맛은 깊어지지만 탁한 맛도 강해진다. 오히려 순수한 라면 본연의 맛을 잊어버리기까지 한다.


우리 사는 세상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첨가물을 너무 많이 넣거나 인위적인 노력이 과하다면 생각만큼 결과가 잘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살아보니 버릴 줄 아는 사람이 얻을 줄도 아는 것 같다. 과함 보다는 부족함이 낫고, 부족함 보다는 자연스러움이 살아가기에 더 좋은 것 같다. 이 또한 나이 사십에 라면으로부터 배운 인생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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