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당연한 것에 물음을 던져보는 일 말이다. 나는 남자로 태어났다. 핑크색을 좋아하면 부모님이 핀잔을 줬고, 인형이나 공기놀이를 좋아하면 남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했다.
남자아이로써의 당연함을 거부하는 것은 남자가 아이를 낳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응당 남자라면’ 같은 말을 되새기며 과거와 현재의 궤적을 그려왔다. 철없는 아들에서 듬직한 아들로, 그리고 아빠가 되는 과정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남자의 삶을 살아왔던 거다.
나이를 먹어보니, 이런 역할극에 넌더리가 나는 중이다. 왜 남자는 꼭 파란색을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며 책임감 가득한 이미지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남자는 뜨개질이 취미면 안되고 다이어리를 쓰면 어긋나는 일일까? 핑크색이 남자에게 부끄러운 색일까?
요즘은 이런 강요 아닌 권장사항에 조금씩 일탈을 해보려 한다. 남자 역할에 질려버린 것은 아니고, 남자가 싫은 것도 아니다. 단지 그 무엇도 될 수 있음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을 뿐이다. 해봤다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게 많았으면 했고, 반쯤 살아봤다는 것보다 반도 못살아 봤다는 생각이 더 유쾌하고 살만해 보였으니까.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무엇도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용기가 마구 뻗친다. 필라테스도 하고, 일기도 쓰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친구들과 카페에서 수다 떨기도 하고, 요리를 하며 잘 먹어주는 가족을 보며 흐뭇해하기도 한다. 딸내미가 스마트폰에 덕지덕지 붙여준 핑크색 하트가 오히려 자랑스럽기까지 한 요즘이다.
그래 강박이라는 것은 자신이 정한 거다. 스스로 부끄러워 혼자 숨었을 뿐. 해보면 안다. 처음만 부끄럽지 하고 나면 후련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나이 먹으면 패기가 생겨 무엇도 이겨낸다기보다는, 무엇을 해도 자연스러워지는 것이더라. 스스로 어색하지 않으면 남이 봐도 어색하지 않다. 나이 사십에 깨달은 유쾌함이자 새로움이지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