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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Mar 09. 2022

주기도 받기도 불편한 존재, 오해

나는 지금껏 오해는 무조건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해를 주던, 받던 그런 상황이 주는 답답함이 너무 싫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오해의 골은 깊었고, 풀어야 할 래는 끝이 없는 듯 보였다.


나는 오해가 싫다. 물론 오해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가급적이면 뜻이 명확한 단어와 제스처로 오해 방지법을 실행해야 함이 맞겠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 오해가 없으면 또 섭섭해질 것 같기도 하다. 말과 행동은 100% 일치할 수 없고, 실행에 옮기기 전 모든 경우에 수를 생각하고 내뱉을 수도 없다. 살다 보면 무조건 오해란 생기기 마련인 것이다.

 
어렸을 적에 난 오해를 하는 편에 속했다. 혈액형이 A형이라 그런지 몰라도 누가 한 말에 대해서 여러 번 곱씹기도 했고, 상대의 행동과 말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말로 표현한 본심을 모두 거짓말이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는 참 피곤하게 살았다. 눈치 보는 것이나 상황 파악 능력을 오해하는데 쓰지 말고 공부하는데 썼으면 지금 일하는 직장과 차가 바뀌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오해를 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토시 하나하나를 다 기억해가며 자신만의 기준으로 분류 작업이 필요하다. 분류가 끝났으면 앞으로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자신만의 기준이 선다. 순수 자신만의 기준인 것이지 상대가 가진 환경이나 상황에 대해서는 잘 고려하지 않는다. 이제 최종 단계만 남았다. 상대가 자신의 의도대로 하는지 지켜보면 된다. 그리고 자신의 기대와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어김없이 오해라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참으로 피곤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근래에 직장 동료가 오해를 해서 진땀을 뺀 적이 있다. 오해를 하지 않기 위해 시도해본 방법이 부작용을 초래한 것 같았다. 방법인즉슨 상대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 연연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런 노력들이 상대에게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기억해 주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비친 듯했다. 대수롭지 않은 듯 생각해 보려는 억지가 무례함을 가져올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당한 오해는 생각보다 단단했다. 당시 나는 그런 오해를 풀기 위해 비굴함까지 내비쳐야 했다. 정말 사소하다 생각했던 부분들이 원인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순간 상대에 대한 호감이 없어지다 못해 반감이 생기기까지 했다. 분명 얼굴에 티가 났을 것이다. 상대 입장에는 사소한 행동 하나로 네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는듯한 모습으로 보였을까 싶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오해를 풀어도 서로 간에 알 수 없는 냉랭함은 그대로였다.


이럴 거면 왜 오해를 풀어야 하나,,, 오해를 사든 팔든, 받든 그냥 다 싫고 그냥 둬버리고 싶다. 내가 떳떳하다면 누군가 오해를 하더라도 그냥 둬버리자


오해로 인한 내 모습이 그렇게 못나게 비친다면 당신은 떠나도 좋다. 가는 사람 잡지 않겠다. 하지만 당신의 무례한 모습에 나도 오해를 하게 된다면 그냥 멀어지겠다는 것이다. 시간이 자나다 보니 어차피 떠날 사람은 떠났고, 남을 사람은 남았다. 남은 사람과 나 사이에 무수히 많은 장애물과 오해들이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지만 서로에 사이는 더 굳건해지더라



얼마 전 책에 봤던 제목이 떠오른다.


 이제는 오해하면 그대로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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