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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비 그리고 바람
Nov 14. 2024
언제부턴가 관계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누군가 만날 때마다 혼자 중얼였다. 왜 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가? 만나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어렵사리 기운 내 만나더라도 억울함에 몸서리치는 건 마찬가지. 오히려 혼자 있거나 가족과 있는 시간이 좋다. 코로나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된 고립이 빨간약처럼 몸속 이곳저곳에 스미는 것 같다. 혼자는 외로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차분하기만 했다. 온몸을 데우는 열감보다 마음 어디든 아물고 있다는 생각에 그저 포근했다.
한때 나는 복닥거리며 살아야 적성이 풀리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단톡방은 쉴 새 없이 울어댔다. 쉬는 것도 사람사이에 있어야 했고, 잠이 쏟아져도 누군가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마음이 놓였다. MBTI로 따지면 극 E 성향. 요즘에는 그 반대가 됐다. 관계를 벗어나고 나서야 참아두었던 숨을 몰아 쉬기 시작했다. 온몸에 혈색이 돈다. 그러고 보니 MBTI도 I로 돌아선 지 오래였지.
얼마 전 혼자 있음을 의식했던 적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 스스로의 욕구가 어디를 향하는지 봤다. 의식하지 않을 테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못 본 척했다. 멀리 떨어진 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미행하는 재미란 꾀나 쏠쏠했다. 계곡 위를 떠다니는 낙엽처럼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특정한 패턴은 있었다. 어쩌면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가장 좋아하는 행위는 책 읽기. 집안 아무 곳에나 널브러져 비스듬히 누워서 책을 읽는다. 스마트폰은 어디에다 버려둔 채 정처 없이 길을 잃고서 읽기를 자처한다.
책장을 넘길 때 ‘사그락’ 거리는 소리가 좋다. 머릿속에 구획을 나눠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해 투명한 상자에 담는 기분이다. 쿰쿰한 종이 냄새도 같이 피어났다. 냄새만큼 기억에 책갈피를 확실하게 열어젖히는 감각은 없는 것 같다. 유년 시절 누구 것인지 모를 전집을 얻어와서는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으니까. 그때 밤새도록 읽었던 호기심 냄새가 풀풀 나는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본다. 손에 묵직한 책이 들려 있고 아직 읽을 책이 책장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저 행복했다. 시간이 이대로 멈췄으면 했다. 당장에 소원을 주관하는 자가 있다면, 나에게 소원을 묻는 자가 있다면,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었다. 지금 이대로 영원히 있게 해달라고.
한참을 읽고 나면 글을 쓰러 간다. 활자가 온몸에 가득 차 넘치는 기분 때문이다. 무어라도 뱉어야 했다. 말이든 글이든 생각이든 뭐든 내 몸에 밸브를 열지 않으면 시름시름 앓아누울 것 같은 빼곡함이다. 자칭 내 방에 들어가 컴퓨터 전원을 누른다. 조명은 최대한 누렇고 어둡게 맞춘다. 모니터 하나는 동서양 유명 여행지를 걸어 다니는 영상을 띄우고 나머지 하나는 배경이 까만 워드 화면을 띄운다. 깜빡이는 커서가 나를 노려보는 것 같다. 쓸거리가 많을 때는 커서의 깜빡임이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막연할 때는 왜 이렇게 약 오르는 것일까. 한참을 머뭇거리다 보면 말에 물꼬가 터지는 순간이 온다. 몸은 이미 알고 있다. 여기 앉으면 1500자 이상은 써야 자러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무슨 말이라도 지껄여야 겨우 지면을 채울 수 있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있었던 일을 마구 토해내기 시작한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사소하지 않지만 사소했으면 하는 일까지.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는 게 머릿속에 마중물을 부어 주는 것 같다. 말이 돌면 생각이 되고, 생각이 쌓이다 보면 글이 되기 시작했다. 대화하듯 글로써 주거니 받거니 한다. 이 생각을 쓰면 저 생각이 따라온다. 혼잣말하는 것 같지만 머릿속은 누군가와 열띤 토론을 벌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1시간 쓰고 나면 바로 알 수 있다. 생각이 비슷한 누군가와 한참 동안 수다 떤 기분이라는 것을.
내가 누군가를 찾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타인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의 위태한 처지를 말하고 위로받고 싶어서? 아니면 무엇도 하기 싫어 제자리에 머무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에? 전자든 후자든 모두 맞는 말 같다. 항상 제자리걸음만 걸으면서도 제자리에 머무는 것은 불안해한다. 남들도 비슷한 처지라면 위로가 되기도 하니까. 계속 곁눈질하며 비슷한 처지에 사람을 찾아다니는 듯했다.
혼자 있으면 조금 다른 방법으로 위안을 삼는다. 독서는 지혜를 얻는 행위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글쓰기는 자신과 대화하며 조각난 자아에 대한 처지를 헤아리는 것과 같다. 누군가의 공감 없어도 활자로 옮기다 보면 스스로 끄덕이며 써내려 갈 수 있었으니까. 쓰고 나면 누군가에 비교하는 행위가 불필요했음을 알게 된다.
요즘은 혼자 있는 시간이 더 역동적이다. 테트리스 게임하는 것 같다. 그간 난잡하게 쌓아둔 블록에 비어있는 모양과 같은 블록만 나오는 기분이랄까. 그간 뚫려 있지만 채울 수 없던 마음에 공허함을 하나둘씩 채우고 있다. 아니 모든 조각이 맞춰지면 잊게 된다.
한바탕 쓰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키보드 타자음이 오늘따라 유난히 경쾌했다. 하고 싶었던 말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어서 좋은 듯하다. 이렇게 쓰고 나니 꼭 은둔형 외톨이 같다. 사람을 피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건 아니다. 사람이 싫고 혼자가 좋은 게 아니라. 사람도 좋지만 스스로 있는 시간이 더 좋은 것뿐이다. 관계는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만 혼자는 에너지로 채워갈 수 있으니까. 나이 사십 정도 되면 스스로에 주인이 되어도 나쁠 건 없지 않은가.
금요일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았다. 직장인에게 있어 금요일은 소란함에 최대치를 찍는 날 아니던가. 무엇을 하더라도 괜찮았다. 주말이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었으니까. 요즘은 금요일 저녁이 다른 의미로 좋다. 주말을 최대한 혼자 또는 가족과 보낼 생각에 계획을 짤 수 있는 시간이니까.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간이지만 도래한 것과 같은 기분 때문에 혼자 웃상이 된다. 무엇보다 혼자 속닥이며 글 쓰고 읽는 시간이 더없이 고요하니까.
잠시 글 쓰다 말고 옷을 주워 입는다. 추위와 어둠이 금요일 저녁의 풍요를 삼키기 전에 산책을 나가고 싶어서다. 이미 잔뜩 들어선 찬기운에 화들짝 놀랐다. 다시 집으로 갈까 하며 머뭇거린다. 아직 금요일이고 주말이 있다는 생각에 다시 산책로로 발길을 돌렸다. 저기 길건너에는 밤바다에 집어등 키고 조업 중인 배가 수십 척 떠있는 것 같다. 지붕에는 연기도 모락모락 피어났다. 고깃집 야외테이블이 만석이다. 삼삼오오 모여 한껏 떠들고 있었다. 한때는 나도 저기 앉아 실컷 즐기던 때가 있었지. 혼자 미소 지으며 종종걸음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