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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Nov 18. 2024

속 좁은 어느 사람 이야기

 정말이지 내 여남은 기운 모두를 빨아가는 기분이다. 오늘은 속 좁은 이야기 좀 해야겠다.


"이것도 해봤는데 안 돼요"

"그것도 해봤는데 소용없어요"

"과연 그게 먹힐까요?"

"내 것만 안되네요"


십 분 동안 그와 내가 나눈 이야기 대부분이다. 나는 되는 쪽으로 제안하고 그는 안된다고 답변하는 식이다. 듣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참신한 이유가 다 나온다. 대단한 창의력이다. 이 정도로 실패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하다면 긍정의 경우로 바꾸면 얼마나 좋을까. 한참을 듣다 생각하는 척하며 고개를 숙였다. 지금 순간을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지 고민 중이다. 한숨을 크게 쉬었다. 그의 질문이 어려워 궁리하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회피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


스스로 한계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머리에 열이 오르고 심박수가 빨라진다. 도대체 무슨 말이 듣고 싶은 걸까? 다 안된다 할 거면서 묻긴 왜 묻는 것일까? 아니면 가망 없음에 대한 확답이라도 듣고 싶은 걸까? 듣다 보니 그의 의중이 궁금했다. 하루는 홧김에 내가 먼저 선수 쳤다.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다 안된다고 했다. 무엇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가망 없겠는데요"

"포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하시죠"


나는 부정적인 말만 늘어놓았다. 쉬운 부정이 비꼬는 것처럼 보일까 싶어 궁서체 같은 말로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의도가 정반대로 나아가면 저런 표정도 될 수 있구나라며 관망한다. 그의 본래 의도는 따로 있는 듯했다. 타인을 이용해 자신이 할 수 없음에 대한 타당성을 확보하려는 것 같았다. 이런 와중에 내가 더 부정적으로 대답을 했으니.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벙벙한 표정으로 생각의 꼬리를 잡고 있었다. 고장 난 스피커처럼 ~저, ~그와 같은 말이 지지직 계속 새어 나왔다.


그는 한참을 더 머뭇거렸다. 하고 싶은 말을 찾는 듯 보였다. 나도 번복할 이유는 없었다. 다르게 생각하면 방법은 나오겠지만 당장에 ‘더’라는 행위가 사치 같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을 한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전두엽으로 피가 쏠리며 생각회로를 마구 돌려댔다. 다시 제대로 말해야 한다며 아우성이다. 최대한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 내가 한 말이 거짓말이 되지 않도록. 생각은 불편했지만 속마음은 오히려 후련하기도 했다. 이왕 던진 말이니 끝까지 밀고 나가자 한다. 그는 다시 또 고장 나 지지직 거리는 중이다. 내가 긍정적인 방안을 내어 놓지 않자 이상하다는 표정이다. ‘오늘따라 너 이상해’라는 속마음이 여기까지 들릴듯하다. 서로 할 말은 더 없을 듯했다. 안될 것처럼 물었고 나 또한 안된다고 답했으니까.


이제는 그도 포기하는 눈치다. 별 소득 없이 돌아서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사실 미안함이 컸지만 어쩔 수 없다. 오늘처럼 진심을 가장한 거절을 하지 않았다면 분명 후회했을 거다. 잠들기 전에 혼자 이불을 걷어차며 발을 동동 굴렀을지도. 지금 내 일만 해도 정신이 바사삭 박살 날 지경이니 말이다. 한숨을 빠르게 내쉬었다 다시 마셨다. 마음을 크게 다잡으며 내 두 볼을 손바닥으로 톡톡 쳤다. 약해지면 안 된다.


나는 타인의 이야기는 잘 들어주는 편이다. 그렇지만 불평불만에 약하다. 누군가의 푸념을 들으면 나도 덩달아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찬다. 풍선에 바늘을 대어도 바늘구멍만큼 서서히 바람이 빠지지 않듯 내 감정도 그렇게 빠져나간다. 내 집중력 광탈의 원인이 그들과 함께 하면서 발생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이 나로 인해 의욕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허무하지는 않을 텐데, 그렇지도 않았다. 모든 제안을 다 부정하고는 매정하게 돌아섰다. 난 결국 푸념 쓰레기통으로 전락한 기분이다. 이런 기운을 떨쳐내려면 많은 힘을 모아야 했다. 다시 이전에 나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호흡과 생각으로 착각해야 했다.


이제는 스스로를 지키는 것에 요령이 생긴다. 주변과 비슷한 보호색을 입는 기분이랄까? 그냥 빨간색으로 다가오면 빨간색이 되고, 파란색으로 변하면 나도 파란색이 된다. 색이 변하는 순간을 의식하지만 본디 생각의 흐름을 잃지 않으려 한다. 어떻게 보면 성의 없음으로 착각해 기분 나쁘게 생각할지도. 배려가 기본이지만 내 기분이 별로라면 배려도 가식이 되고 마니까. 이제는 우선순위에 변화를 줄까 한다. 진정한 배려가 필요한 이에게 배려할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쉼으로써 보답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를 힐끔 봤다. 그는 자기 자리에 가다 말고 다른 이에게 찾아갔다. 손바닥을 펼치며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 중이다. 언성이 조금 높은걸 보니 무언가에 심취해 말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동료 역시 낯빛이 어두워지는 중이다. 그는 지금 말하고 있는 동료와 앞으로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동안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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