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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비 그리고 바람 Nov 23. 2024

결론 강박증

 결론이 꼭 있어야 하나?

그러고 보니 내 글에는 항상 결론이 있었다. 아니 있어야 했다. 그래야 글인 것처럼. 글 쓰는데 이유가 있듯 그럴싸한 목적이 있길 바랐다. 기승전결, 우여곡절이 오더라도 반드시 그 끝은 의미가 차올라야 비로소 마침표를 찍는다. 그때부터인 것 같다. 뜨뜻미지근한 글을 경계하고 교훈 가득한 글에 강박이 생긴 듯하다. 내 메모장에는 그렇게 빛을 보지 못한 채 숨죽이며 기다리는 글이 무수히 많다. 단지 결말을 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웅장하게 때로는 뭉클하게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매번 두 눈을 부릅뜨고 써내려 갔다. 밑줄 긋고 와~ 할 정도의 문장이 쏟아져야 비로소 안심한다. 이번글은 어떻게 될 것인지 짐작해 본다. 과연 글이 될 수 있겠구나와 될 수 없겠구나를 저울질한다. 단지 느낌이라는 잣대 하나만으로. 글에도 운명이란 단어로 빗대어 본다. 사주팔자나 타로점처럼 첫 문장으로 인한 결말을 상상하곤 한다. 쓰고 말고를 몇 번이고 갈팡질팡 한다. 쓰다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접고 만다. 어차피 안될 글이라며 첫 문장 운명론을 들먹인다. 결론짓지 못함에 오는 자괴감 보다 차라리 그 편이 마음 편했으니까.


얼마 전부터 결말을 개의치 않는 느낌이다. 시기로 따지면 관계에 힘이 빠지는 시점과도 닮아있다. 사람사이 관계에 대해 효용이나 따지고 몸에 좋고 나쁘고를 따지지 않게 되었다. 몸에 좋은 칡뿌리 같은 사람 만나려다 기운만 잔뜩 허비한 날들. 자식 잘 키워봐야 소용없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처럼 주어만 관계로 바꿔보는 상상을 한다. 사이가 아무리 좋아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고, 필요를 위해 관계를 만드는 것은 소용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마음을 기울인 만큼 결과를 뽑아내는 일에 진저리가 난 걸까? 아니면 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자연스레 힘이 빠지는 과정이 썩 나쁘지많은 않다. 행복이란 결과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오는 것을 몸도 아는 눈치다.


생각에 몽롱함은 아니지만 또렷함도 아닌 느낌. 정신은 흐릿하지만 글이 마구 나오는 순간을 기억한다. 지금도 그 기운에 반쯤 취해 쓰는 중이다. 저녁 9시가 넘어간다. 어둠과 달과 깜깜함이 세상 모든 것을 삼키고 나면 마음에 문이 열리는 것 같다. 어떤 주문을 외워야 하고 두세 번 각성해야 들어갈 수 있는 차원의 문 같다랄까. 문턱에만 머물며 영롱한 저편 세상만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다. 이성이 또렷해서 억지로라도 써야 했던 날들이다. 주어 다음 서술어가 와야 하고, 시작이 있으면 결론을 내야 하는 것처럼. 알 수 없는 관성에 끌려 다니며 쓰고 말고를 반복했다. 잔뜩 움츠린 채 나아지지 않는다며 속상했던 과거다.


쓰면서도 생각한다. ‘까짓 거 결론이 없으면 어때, 아무리 잘 써도 모두에게 이로운 글은 없지 않나?’ 지극히 평범하지만 거짓 없는 사사로운 글을 계속 쓰고 싶어 한다. 남을 위해 쓰더라도 나만 쓸 수 있는 글이 있고, 가장 나다운 글로 쓰면 되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 자연스레 활자가 놓인다. 어딘가 본 듯한 섬세한 문장을 써보겠다가 아니다. 내면에 숨어있던 쿰쿰하면서도 유치하지만 어색하지 않은 문장이 자유롭게 드나든다. 빵 위에 업혀 있는 치즈가 오븐 속에 녹아내리듯 생각의 결이란 게 나타나 눅눅하게 활자를 감싸는 것 같다. 무엇보다 다음 문장 그리고 다음 문장에서 오는 생각이 어색하지 않아 좋다.


나에게 있어 글은 소중하다. 목표이면서 수단이기도 하고 과정이기도 하다. 글을 쓰기 위해 글로 써 본다 랄까. 유치한 말장난 같아도 내가 글을 대하는 진지함이기도 하다. 글을 잘 쓰면 성공한다가 아니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행복하다 같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허투루 보내고 있지 않다는 느낌, 삶을 차곡차곡 쌓아간다는 느낌, 다시는 없을 지금과 어제를 회고하며 써내려 간다. 쓰기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아우르는 동사다. 곱씹고 다짐하며 조금씩 미래를 위해 쌓아가는 행위다. 행복이란 느끼고 싶은 만큼 고통을 감내해야지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왕이면 고통도 희열로 치환할 수 있는 수도꼭지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아지경에 이른 세상은 고통도 후회도 시간도 소용없기 마련이다.


결론으로 닿지 않는 글이라도 좋다. 어차피 사는 것 자체가 모순이고 수수께끼이고 억지처럼 느껴지니까. 그 순간순간에만 집중할 뿐이다. 모순이 가고 억지가 가고 시간이 흐르고 나면 왠지 모를 유쾌함이 오기도 한다. 웃다 보면 그 속에 해답을 찾기도 한다. 꼭 해답이 아니면 어떤가. 다음에 다시 꺼내 맞춰볼 수 있는 퍼즐을 하나 더 쌓아가는 거다. 어차피 궁극적인 해답은 없다. 영영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단지 종료와 시작 사이에 찰나만 목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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