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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비 그리고 바람
Dec 08. 2024
세상은 두 개다.
흑백논리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쪽이 옳다면 분명 반대쪽도 옳을 수 있음을 말하고 싶다. 둘 다 합당한 근거가 있고 이유가 있다. 지금은 억측 같아도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에는 합리적일 수 있듯이. 우리는 그저 더 옳다고 생각하는 세상에 잠시 머물며 반대편을 삿대질하는 중인 것 같다.
아침 출근길. 나는 7시까지 출근한다. 처음 직장 다닐 때만 해도 출근시간이 10시면 얼마나 좋을까 했다. 출퇴근이 자유로운 외국 기업을 보며 군침을 흘렸다. 얼마 후 자율 출근이 현실로 다가왔다. 코로나가 쏘아준 작은 공 때문이다. 재택근무나 출퇴근 시간 조율이 가능했다. 막상 때가 되니 10시 출근은 억측처럼 들렸다. 조금 더 늦게 잘 수 있었지만 늦게 잘 수 없었다. 가족이 있고 아이가 있는 사람은 이해할 것이다. 오히려 빨리 출근해 저녁이 있는 삶을 즐기고 싶을 뿐. 결혼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 간 묘하게 편이 갈렸다.
회사에 도착 후 차는 가급적 멀리 주차한다. 허리 디스크 때문에 고안한 운동법이다. 많이 걷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출근길은 발길이 무겁고, 퇴근길은 귀소본능 때문에 건강 따위 안중에 없었으니까. 결국 억지로라도 걷기 위해 기지를 발휘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차를 주차한다. 차가 너무 없어 꼭 휴일 출근 같기도 하다. 느긋하게 내려서 걷기 시작한다. 회사 가까이 다다르자 주차 전쟁이 한창이다. 어떻게든 가까이 대려는 자와 더 가까이 대려는 자들 사이에 눈치게임 중이다. 나는 그들 사이를 방관하며 유유히 걸어간다. 간혹 늦게 오고도 가까이 주차한 승리자와 눈이 마주친다. 쟁탈에 성공한 자의 표정이다. 그러고는 꼭 안도에 한숨을 덧붙였다. 그들은 출근시간을 종종 지키지 못했다. 주차 공간이 없어 먼 곳까지 가야 했다며 푸념하곤 했다. 그들에게 먼 곳이란 내가 주차 한 곳보다는 가까운 곳이었다.
걷는 것에 연장선인데 회사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는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은 5층건물 중 5층.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계단으로 간다. 택배를 가지러 갈 때도 회의를 갈 때도 계단을 이용한다. 뒷짐 지고 천천히 계단을 오르다 보면 뜻밖에 선물과 마주 할 때가 있다. 그간 풀리지 않던 일에 실마리가 보이기도 하고 쓰고 싶은 글감이 생각나는 경우도 있다. 건강에 좋은 것은 덤이다. 계단을 오를 때 들리는 소리가 있다. 한칸한칸 밟으며 올라가는 소리가 꼭 차곡차곡처럼 들리기도 한다. 계단에 발을 디딜 때마다 건강과 창의력이 번갈아 쌓이는 기분이다. 그간 일거리에 묻혀 숨죽이며 지내던 자존감이 본모습을 찾아가는 기분이다. 학창 시절 야자 땡땡이치고 만화방에서 혼자 만화 보는 기분이랄까. 간혹 헥헥거리며 자리로 복귀하는 내 모습을 보고 동료들은 묻는다. 뛰어 왔느냐고. 나는 계단으로 올라와서 그렇다고 하면 그들은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았지만 다른 층에서 누굴 만나고 온 줄 아는 눈치다. 5층까지 걸어올 일 없다는 전제조건하에 말하는 중이다.
점심시간에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10분 전부터 살살 기운이 몰려온다. 배고픔 보다 책을 읽고픔이 앞선다. 책에서 멸치 볶음과 같은 달달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다른 이들도 준비된 건 마찬가지. 누구는 허기를 채울 생각에 침을 흘리고 누구는 잠 잘 생각에 의자를 뒤로 한껏 젖힐 준비를 한다. 누구는 산책을 즐기고 누구는 모니터에 충혈된 눈을 감으며 잠시나마 지친 몸을 다독인다. 나는 점심을 먹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찬이 영 아니다 싶으면 마음에 양식으로 대체한다. 간헐적 단식도 하고 공복에 책을 읽으면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다는 걸 아니까. 회사밥이 맛없어서 다행이라며 혼자 중얼인다.
책상 밑에 작은 정사각형 스툴을 끄집어낸다. 신발을 벗고 두 발을 그 위에 꼰 채 올린다. 간혹 축축해진 양말을 벗기도 한다. 책을 집어 들고 블라인드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을 비스듬히 바라본다. 그리고는 책을 젖혀 한 손으로 꼬나들고 읽기 시작한다. 바로 지금 이 찰나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다들 밥 먹으러 간 고요한 사무실에 혼자 읽는 책이 가장 맛나다. 어떤 이는 이런 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본다. 너 재수 없어 같은 눈초리로 책과 나를 번갈아 보기도 한다. 왜 혼자 고상한 척 떠냐는 표정. 그 시선은 곱지 않지만 책을 보는 내 시선이 더 좋다. 매일 5년 동안 꾸준히 읽었다. 점심시간 30분씩 읽으면 한 달에 1~2권씩 손때를 가득 묻힐 수 있었다. 눈총 주는 이들도 이쯤 되니 포기하는 눈치다. 쟤는 원래 저런 애구나 한다. 길가에 차이는 자갈 취급 한다.
이 몇 가지 사실만 봐도 같은 세상 다른 세상 같다. 서로가 이상하게 쳐다보면서도 자신은 옳은 곳에 있다 한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내가 반대편 서 있었던 경우도 있었지. 세상이 복수임을 의식하면 어디든 갈 수 있음에 관대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 딴짓을 해도 불안하지 않다. 오히려 딴짓에 충실하게 된다. 예전에는 타인에 시선을 의식하고 최대한 다수가 만든 이상적인 모습에 집중했다. 그렇게 살아야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으니까. 간혹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렵다는 말을 되뇌곤 한다. 어쩌면 정말일지도 모른다. 다수가 만든 세상은 내가 다수가 될 수 없기에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일지도. 오늘도 어떤 딴짓으로 나다운 세상을 만들지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