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 비 그리고 바람 Dec 15. 2024

동화, 소설 그리고

 창작자의 삶을 꿈꾼다.

야트막한 수면상태에 허망한 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눈 떴을 때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온 생각이다. 매일 직장으로 출근하며 맨 정신으로 다닐 수 없다며 다짐했던 날들이 스쳐간다. 씻자마자 출근해야 하는 삶이 아닌, 쓰고 싶을 때 책이 가득한 개인 서재로 출근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간혹 딸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 읽다 보면 전개에 마음이 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이렇게 가다니. 좋은 길 두고 아쉽다 한다. 어쩌면 동화책은 내가 더 잘 쓸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거드름 잔뜩 들어간 혼잣말을 내뱉자 이유 없는 자신감이 샘솟는다. 해볼 만했다. 참신함 보다는 어이없음에 가까운 창의력은 내가 더 뛰어난 듯싶었으니까. 오히려 딸아이는 뻔한 권선징악에 찌든 아름다움보다 어이없으면서도 전혀 다르게 전개되는 황당함에 더 후한 점수를 줬다. 왕자가 용을 물리쳐 공주와 결혼하기보다 공주가 운동선수가 되어 골프채로 용을 압살 하는 편이 더 재미있다는 거다.


스스로 일기 같은 글 몇 자 찌끄려 놓고 잘 썼다고 손뼉 친다. 외모에도 나르시시스트가 있다면 글에도 있을지 모를 자만심을 자주 느낀다. 간혹 샤워 후 올백머리에 물이 뚝뚝 흐르는 내 모습이 섹시해 보일 때가 있는 것처럼. 글도 그런 조건이 있는 것 같다. 혼자만 쓰는 글이고 어떤 영감을 받아 일필휘지로 멋짐 뚝뚝 흘리고 있는 내 모습을 의식할 때가 있으니까. 초고를 보기 전까지는 어떤 글을 써도 잘나 보이긴 했다. 쓰는 순간에는 대단한 걸 쓰는 사람 같다. 쓰고 나서 읽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초고는 역시 쓰레기라고. 그냥 쓰던 일 계속하며 내공을 더 축적하자고.


이상과 현실이 벗어날수록 멀미가 난다. 차에서 느끼는 어지러움만이 아니다. 삶에서도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다. 마음만 앞서고 몸은 그렇지 못한 상황, 운동에서도 자주 나타날 수 있는 간극이다. 글을 처음 쓸 때도 그랬다. 지금 이 순간을 포착해 써야지 하면서도 쓰다 보면 다른 글이 나타났다. 비슷한 투입이 반복되면 비슷한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내 글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로또 번호 추첨하는 것처럼 엉뚱한 값만 튀어나왔다. 간혹 신의 한 수 같은 글도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에 스스로 감탄하곤 했다. 그렇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 그런 한 수 때문에 그다음이 슬럼프처럼 보이곤 하니까.


요즘에는 오히려 신의 한 수 같은 글을 경계한다. 대신 평범한 글을 소신 있게 쓰고자 한다. 점점 글에 평범해지는 듯 보여도 생각과 글에 간극은 수렴 중이다. 감정과 필력에 요철이 줄고 있다 해야 하나. 경험한 것 이상은 쓰지 못하더라도 경험한 만큼은 쓸 수 있었다. 나아가 마음 이곳저곳에 자리 잡은 삐죽함이 뭉툭해지는 기분이다. 아무런 특색 없는 글 같아도 내 생각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좋다. 읽으면 내 글이구나 할 법한 글냄새가 자주 났다. 평범한 내 글이 좋았다. 길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잡초 같아도 이름을 아는 이에게는 특정한 이름을 가진 생명일 수 있듯. 흔해 보여도 알려지지 않은 고유 명사 같은 글을 쓰는 존재이고 싶었다.


이렇게 쓰다 보면 자그마한 씨앗이 자라기 시작한다. 늘 쓰던 글을 쓰다가도 어떤 것도 해보고 싶다는 용기로. 근거 있는 용기는 무모함과는 다른 용기다. 무턱대고 해보자 보다는 어쩌면 될 수도 있겠다 같은 일말의 가능성을 내포한다. 처음 내가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가 기억난다. 국어와 독서가 싫어 이공계형 인간이 된 나로서는 쓰기란 이집트 상형문자 연구만큼이나 어색한 활동임이 분명했다. 쓰기 아니면 안 된다며 중얼였다. 무모한 듯 보이던 용기가 지금에 쓰는 인간을 만들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좋은 상황이다. 최소한 내 마음을 활자로 옮기는데 두려움은 없으니까.


이미 동화를 쓰고 있다. 엉뚱하게 끝내려는 욕심 때문에 아직 완성은 하지 못했다. 소설도 마찬가지. 어떤 상황과 장면을 가정해 쓰는 연습 중이다. 평소보다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경쾌하다. 직장에서 입 닫고 지내다가 자판 앞에서는 언제나 수다스러운 사람이 된다. 그저 하루가 즐겁다. 새로움에 몸부림치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말 못 할 수줍음 같아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자신감으로 바뀌는 순간을 기억한다. 매번 이런 순간을 만들고 찾아가는 사람이 행복하지 않을까? 매일 같은 것만 반복해서 지겹다면, 아는 길 말고 다른 길로 접어들 용기가 필요하다. 익숙한 길을 표정 없이 걷기보단 초행길을 마구 색다른 표정으로 걷는 이가 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