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빠빠빠 빠라밤~ 빠라라라~~
익숙한 배경음과 함께 ‘토요명화’란 글자가 티비속 화면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 오프닝 음악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토요일은 유일하게 영화 보면서 늦게 자는 것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토요일 아침, 거실바닥에 엎으려 다리를 까딱이며 콧노래를 흥얼이고 있다. 느긋해 보이는 듯해도 아빠가 두고 간 신문을 뒤적이느라 손은 분주하다. 신문을 팍팍 넘기면서도 한자가 거의 3할인데 어떻게 읽느냐며 대단하다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나의 관심사는 단 하나, 티비편성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다. 그중에서도 토요명화 제목 확인을 제일 좋아한다. 1주일 동안에 모든 프로그램과 시간을 나열해도 펼친 신문에 반에 반도 차지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방송채널이라 해봐야 KBS1, KBS2, MBC, EBS 고작 4개가 전부. SBS도 있었지만 서울에서만 볼 수 있는 방송이라 눈으로만 흘길 뿐이다.
나는 깨알처럼 빼곡한 시간표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토요일, 토요일, 토요명화, 저녁 9시 이후부터니까, 그러면 터미네이터2, 뭐 뭐라고? 터미네이터2” 나는 몇 번이고 다시 읽었지만 변함은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내가 펼쳐놓은 신문지를 밟으며 미끄러질 뻔하면서도, 터미네이터 투, 투 라는 말을 강조하며,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는 고개를 갸웃하며 대답했다.
“터미네이터2” 청소년 관람불가일 걸”
억장이 무너졌다. 그것까지 생각 못했는데. 그저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인지 관람불가라는 말에 눈물샘을 잡고 있던 끈이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코를 훌쩍였다가, 눈물을 훔쳤다가, 발을 쿵쾅거리며 따지러 가다가, 다시 머뭇거리길 반복했다. 혹시라도 정도가 지나쳐 아빠 귀에까지 들어가면 큰일이니까. – 그때만 해도 엄마가 아빠에게 귀띔만해도 난 정말로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는다는 표현을 실감할 수 있었다 – 아무 말 못 하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냥 문을 닫으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문 손잡이를 잡고 더 밀었다가 다시 당기며 쾅하는 소리를 냈다. 꼭 내 마음을 대변하는 소리 같아서, 통쾌하기도 했지만 얼얼한 손바닥 감각 때문인지 미안함 때문인지 잠시간 미간을 찌푸려야 했다.
침대에 누워 입만 삐죽거렸다. 왜 어른은 되고 아이들은 볼 수 없냐, 영화는 많이 봐야 좋은 거 아니냐 같은 식의 울분의 목소리가 억눌린 울대를 타고 나왔다. 비디오테이프에 붙은 붉은 스티커에 대문짝만 하게 적혀있던 관람불가라는 문구가 계속 떠올랐다. 몰래 보면 어떻게 되는 걸까? 경찰이 어떻게든 알고 잡아갈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덕분에 희망이 체념으로 변해가던 찰나,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방문을 넘어 먹먹하게 울리고 있었다.
“오늘 터미네이터2 봐~ 근데 조건이 있어”
엄마는 타이르면서도 위로해 주는 듯한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쾅하고 닫았던 방문소리를 내던 자신이 부끄러워질 때쯤, 엄마는 옅은 웃음을 띠며 건을 붙이고 있었다. “만약에 빤스가 보이거나, 피가 보인다면 바로 방으로 들어가기다” ‘빤스’에서 풉 하고 뿜었지만, 사뭇 무거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웃고 넘길 정도의 우스갯소리겠지만 불과 몇 달 전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토요일 밤 11시, 유독 많은 광고로 뜸을 들이던 토요명화가 막 시작하고 있었다.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보겠다고 눈꺼풀을 뒤집으며 버텼다. 영화가 늦게 시작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 메시지는 바로 ‘애들은 자라’. 나는 고집부리다 결국 어느 여인의 빤스를 보고야 말았다. 정말이지 화들짝 놀랐다. 그날 빤쓰를 봤다는 이유로 빤쓰까지 벗겨진 채 밖으로 쫓길 뻔했다. 토요명화라고 가족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건 아니라던 아빠의 호통이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이다. 항상 엄마는 내 편을 들어주셨지만, 그때만큼은 아빠를 나무라지 않으셨다.
터미네이터2, 어떤 내용일지 상상했다. 과연 중간에 빤스가 나올까? 피가 튀길까? 같은 생각으로 머릿속은 가득했다. 주변에 봤다는 친구도 없고, 인터넷도 없었으며, AI는 더더욱 상상할 수 없던 세상이었으니까. 그저 기대에 맡기고 상상으로만 내용을 쫓을 뿐이다. 2편을 보기 전에 1편을 다시 보고 싶어도, 마음대로 볼 수도 없으니. 모든 것은 아날로그였지만 그렇다고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궁금한 영역은 오히려 상상력으로 채우면 그만이었다.
늦은 저녁, 우리는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들떠있었다. 엄마는 과일을 깎으며 시계를 흘겼고, 아빠는 소파에 누워 바둑책을 보며 시간을 흘렸다. 나는 거실 바닥을 굴러다니며 벽에 부딪힐 때마다 시간을 물었다. 시간을 앞으로 돌리면 얼마나 좋을까, 다 보고 나서 다시 시간을 뒤로 돌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시간의 길이를 늘이고 있었다.
드디어 9시, 아빠는 모기장을 장롱에서 꺼내왔다. 푸른 줄무늬가 돋보이는 사각 모기장. 영화를 보다 잠들면 모기들의 파티가 이어질 것을 감안해 미리 치시려는 듯했다. 이미 거실에는 모기장을 위한 끈이 모서리마다 존재했으므로, 우리는 모기장 모서리를 하나씩 붙잡고 묶었다. 모두 희끄무레한 모기장에 안착. 티비를 모기장 안으로 넣을 수 없어서인지 화면에는 푸른 줄무늬가 떠다니고 있었다. 결국 불을 끄고 보기로 했다. 드디어 기다리던 토요명화 배경음이 깔리고 가슴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기다리던 영화의 몰입감은 장난 아니었다. 그렇게 놀라던 사이, 환한 빛 덕분에 눈을 떴다(?) 왜 불을 켜냐고 하려는데 화면에서는 자막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 엄마와 아빠는 침을 흘리고 자느라 영화를 거의 보지 못한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영화 재미있었지?” 라며 짓궂은 확신을 날리고 있었다. 왜 안 깨웠냐는 말을 하면서도,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모두가 기분 좋게 웃고 있어서인지, 그냥 티비만 끄고도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아마 이미 지나버린 것에 대한 체념이 울분대신 깊게 자리 잡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날 밤 꿈을 꿨다. T1000이라는 터미네이터가 모든 아파트를 쓸어버리고 있었다. 나는 도망가야 한다면서도 그를 보고 싶다는 열망 때문인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먼발치에서 영화를 못 본 것에 대한 호기심을 꿈에서나마 채우고 있었을지도. 다음날 아침, 아빠는 공테이프를 내밀었다. 내가 자는 거 보고 따로 녹화를 하셨다고. 말도 못 할 만큼 좋았지만 이상하게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간신히 치워두었던 아쉬움이 별일 아니라는 듯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고맙습니다 아빠. 지금도 가끔 그런 밤이 있다. 기다리던 걸 놓쳤는데,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는 밤. 그런 밤을 하나 둘 헤아리고 났더니 이미 꿈을 꾸지 않는 나이가 된 것 같다.
오히려 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지금보다, 볼 수 없었던 시절이 더 행복했던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마음대로’에는 그만큼에 실망과 희열이 묻어날 공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